강미란 수필가

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구조에서 퇴직 연령이 점점 빨라지고, 기성세대가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든다. 우리 사회는 청년세대도 기성세대도 여전히 아프다. 슬프게도 이 사회가 겪고 있는 이러한 아픔은 내년에도, 후년에도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 같다.

세상 어느 한구석에 내 자리가 있다는 것은 삶의 축복이고 행운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직장이 있고, 나와 함께 할 동료가 있고, 정을 나누는 가족과 이웃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내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만만치는 않다.

언젠가 영화 ‘인턴’을 본 적이 있다. 기품과 경륜이 넘치는 70세 인턴, 벤이 등장한다. 한 직장에서 40년간 근무하고 은퇴한 벤은 젊은 여성 CEO가 운영하는 회사에 입사한다. 온라인 패션 스타트업(신생 창업기업)기업이 정부 시책 때문에 채용한 시니어 인턴이다. 주인공 벤은 현란하지만 허술한 점이 많은 젊은 친구들에게 삶의 숙련이 무엇인지를 넌지시 알려준다. 딸 같은 어린 상사 줄스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고, 힘든 고비마다 결정 장애를 일으키면 인생의 지혜를 들려준다. 벤은 CEO 줄스가 회사와 가정일 등 삶의 안팎에서 눈물 흘릴 때 다림질한 손수건을 건넨다. 쓰지도 않으면서 "매일 아침 손수건을 챙기느냐"는 젊은 후배의 질문에 주인공은 말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손수건을 안 가지고 다니지. 근데 자네, 손수건의 진짜 용도가 뭔지 아나. 바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거라네."

아날로그는 이제 뒤떨어진 삶의 방식이라 믿었던 후배들에게 ‘70세 인턴’은 그 자체로 경이驚異였다. 벤은 누구에게 책임을 묻고 분노를 터트리기 전에 젊은 세대들에게 기죽지 않고 일을 찾아 나서고 결국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 당당하게 살아가는 벤은 우리에게 ‘내 자리는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준다.

내 자리의 가치 기준은 지위, 권력, 수입, 승진과 같은 요소가 아니다. 자신의 강점에 새로운 삶을 재창조하여 이전보다 더욱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지금 내 자리가 있다는 건 그간의 경험과 실패로 다져진 지혜와 연륜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며 누군가를 위해 눈물까지도 닦아주는 그런 존재로 내 자리에 있다는 건 멋진 인생, 풍요로운 삶이 아니겠는가.

새해가 밝아왔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며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들지 말고 삶에 도전하자. 힘들지만 버티고, 버겁지만 극복해 보자. 내가 앉아 있던 자리를 뒤돌아보며 내가 있어야 할 자리, 내가 필요한 자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내 자리가 있다는 것은 삶의 의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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