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창문 틈새로 아슴아슴하게 새벽이 열리고 있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설렘이 있는 것도, 날이 새면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산적한 것도 아니건만 매번 같은 어둑새벽이면 여지없이 정신은 또렷해진다.

이른 아침부터 할 일이 그리 많지 않은데도 몸이 잠을 밀어내는 건 아마도 나이를 한 살 보탠 대가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잠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아침의 신선한 기운보다는 서글픔이 앞선다. 늙음이란 단어 앞에서 몸이 더 뻐근하고 천근만근인 듯 무겁기만 하다.

어차피 잠을 더 청해봐도 헛수고일 것 같아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거실 창의 빗장을 열었다. 겨우내 걸어두었던 걸쇠를 풀고 창문을 여니 여명이 걷히면서 창가로 모여든 햇살들이 봇물 터지듯 밀려온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바깥공기가 온몸과 마음과 영혼이 하나가 되어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듯 상쾌하다. 겨우내 웅크리던 사지에 눌어붙은 묵은 체증이 씻기며 새로운 새벽 기운으로 온몸을 흔들린다.

베란다로 나가 화단 앞에 앉았다. 화단은 꽃이 피어나던 시절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뻔질나게 넘나들던 곳이지만 꽃이 지고 나면 자연스레 발걸음이 뜸해지는 곳이다. 간간이 물주기만 했을 뿐 겨우내 외면했던 화분들에서 괜스레 미안해져 배양토 한 줌씩을 얹어주며 묵은 떡잎을 잘라냈다.

거름으로 성토를 하다 자그마한 화분에서 파릇하게 솟아오른 푸른 생명 한 포기에 눈길이 꽂혔다. 순간 무언지 형언할 수 없는 오묘한 떨림이 내 손에 전율처럼 전해진다.

유난히 추웠던 올겨울을 보내며 아직도 멀기만 한 봄이려니 생각했는데 그 가냘프고 작은 생명은 잎을 돋우고 꽃망울까지 성글게 맺고 있었으니 순환하는 계절에 묵묵히 순응하고 있었구나. 겨울이 물러가면 여지없이 봄을 불러내는 작은 생명 앞에서 그깟 추위가 시련이라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인들, 잡초인들 자기 삶의 몫에 최선을 다해 묵묵히 살아간다면 어떤 난관인들 무엇이 두렵고 고난이라 할까.

잠이 내 몸에서 자꾸만 멀찍이 달아나는 것이 나이가 듦이라기보다 무기력해지려는 정신을 다잡고 청량한 기운으로 하루를 성스럽게 시작하며 삶을 사유(思惟)하라는 의미인가보다. 작은 식물들의 인내와 묵묵한 기다림의 결과가 눈에 보이는 것만 평가하던 나의 편목(偏目)이 가히 부끄러워지고 하루를 일찍 열어가는 몸의 기운이 감사함으로 먼저 자리하는 아침이다. 계절의 변화에 꽃나무 가지마다 쉼이 없는 물 올림으로 촉을 틔우고 흙을 품어 싹을 키우듯 변함없는 매일의 아침이 내 삶의 가장 숭고한 시간으로 맞이하며 날마다 새롭게 변모해 가리라. 시샘 달이라는 2월의 막바지에 꽃샘바람을 이겨낸 봄은 정말 가까이 왔다. 내 맘 안에 분명 봄기운이 들어와 자리하니 심신이 따스하다. 정녕 봄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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