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아이의 회동 그래한 눈가에 금세 눈물이 차오른다.

호수같이 맑은 두 눈에 찰랑찰랑 차오른 눈물은 급기야 방울져 볼을 타고 내려와 뚝 떨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반짝이며 눈물을 떨구는 아이의 입가엔 환한 미소가 번진다.

어린이집 하원길에 제 어미를 만난 세 살배기 손자의 모습이다. 할미가 어린이집 하원길에 늘 동행했었는데 일찍 퇴근한 제 어미를 생각지도 않게 마주하자 반갑고 기쁜 마음을 눈물로 반가움을 표한다. 형언할 수 없는 벅찬 심경을 어떤 언어로도 덧칠하지 않고 맑고 티 없이 벅찬 감정 그대로를 보여주는 손자가 할미의 눈에도 눈물을 맺게 한다.

행복이 더할 나위 없이 클 때는 미소보다 눈물이 먼저 나온다던가.

나는 여태껏 살아오면서 기쁨을 대신한 벅찬 감정을 눈물로 홀려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혈기 넘쳐나는 젊은 날, 삶에 부대끼어 아파져 올 때면 아프다는 소리보다 눈물을 먼저 쏟아냈다. 서슬에 베인 상처 앞에서 성찰보다는 상대에 대한 원망으로 쏟아내던 유일한 외침이 눈물이었던 것 같다. 아린 심정을 눈물로 토해내면 아픔도, 상처도 위로받는 줄 알았으니까.

울분과 성난 눈물이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오랫동안 흉터를 부여잡고 속울음을 삼키기도 했다.

이젠 점점 나이가 들며 눈물 흘릴 일이 시나브로 줄어든다.

누군가 왜 울지 않느냐고 물어온다면 이젠, 세파에는 의연해져 쉽게 동화되지 않고 삶이 노숙(老熟)해졌다고 대답해야 하나. 그렇다고 나이 듦에 꽃길만 걷는 것도, 덜컹거리는 인생사가 정녕 없어서도 아니다. 세상사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그리 놀랍지도 않고 아프게 상처받을 일도 이젠 그리 많지 않음도 사실이다.

풋내나는 감성이 이젠 어느 정도 영글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깊이 성찰해가며 원숙하게 다지려 노력했고 연륜에서 얻어진 깡다구도 눈물을 대신하며 한몫한다.

나이가 들수록 아량과 여유를 눈물자리에 대신 앉히는 지혜를 배우려 하니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더 커져 흐뭇하게 미소 지을 일이 곳곳에 많아진다.

눈물은 말이 없는 언어라 했다. 진정한 눈물은 슬픈 첫 페이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말의 기적에서 나온다 했으니 심금을 울리며 흘리는 눈물이야말로 가히 숭고하다 하지 않을 수 있으랴.

네덜란드속담에 아내는 세 가지 눈물을 지니고 있는데 괴로움의 눈물과 초조의 눈물과 체념의 눈물이란다. 살면서 감동과 행복으로 가슴 뭉클하니 눈물이 날 때가 많고 많은데 어찌 아내의 눈물 종류가 이 세 가지뿐이라 말할까.

눈물샘을 자극하던 지난날의 상흔들도 이제 와 세월의 강물에 비춰보니 한낱 흩어지는 물보라에 지나지 않았다. 올해도 안온한 하루를 감사하면서 벅찬 기쁨과 사랑스러운 눈물만 한 바가지 흘릴 날이 많아지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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