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수필가

소년의 행동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의 표정을 지나칠 수 없어 행동을 주시한다. 미동도 없던 어깨가 살짝 흔들리는 듯하다. 무표정한 모습과 달리 두 손에 쥐어진 가위는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다. 가위의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다. 축하 무대에 오른 소년 품바가 온 신경을 붙잡는다.

가을을 맞아 지역 축제가 한창이다. 혜안글방 도반의 문학공모전 수상차 옥천을 거쳐 스승님의 문학상 수상식장인 음성으로 향한다. 수상자들을 축하하고자 품바들도 출동한다. 중년 품바의 화려한 입담에 객석 이곳저곳에서 폭소가 터진다. 하지만, 젊고 앳된 품바의 ‘너희야 그러든 말든’이라 말하는 듯한 무심한 표정이 나의 웃음을 삼켜 버린다. 우스꽝스러운 화장과 손바닥만 한 리본을 머리에 꽂은 모습이 천상 품바인데 표정은 해탈한 고승만 같다. 나의 시선은 그 둘의 행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쫓는다. 그러다 소년 품바의 입가에 설핏 스친 미소를 발견한다.

그가 억지로 끌려온 건 아니리라. 가위 장단이 현란한 것을 보니 하루 이틀 익힌 솜씨는 아니다. 소년의 표정이 처연하지만, 잠깐 스친 그의 미소에 안도의 숨을 내쉬는 중이다. 입술도 노래하는 듯 미세하게 움직인다. 어디 그뿐이랴. 어깨도 들썩이는 것 같고 발장단은 그보다도 현란하다. 자세히 보니, 그가 춤을 추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 하나의 산을 넘는 중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애벌레처럼 부끄러움의 껍질을 벗는 중이리라. 아니 어쩌면, 나의 선입견일지 모른다.

도반 생각은 전혀 다르다. 그는 부끄러움을 가장하고 있단다. 대장 품바의 현란하고 구성진 입담과 젊은 품바의 시크함을 내세운 그들만의 콘셉트일 거라고 말한다. 순간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은 뚫리는 느낌이다. 젊은 품바의 표정이 억지로 하는 품새만 같아 측은지심마저 들던 참이다. 도반의 말에 따르면, 젊은 품바가 객석에 앉은 이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것이라니 내가 감쪽같이 속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린 품바의 표정에 해석이 분분하다. 하지만, 그에게 속았다면 차라리 기분이 좋을 듯싶다. 모든 사물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지 않던가. 스승님은 늘 글제를 찾을 때 보이는 것에 속지 말고 속내를 살펴보라고 하신다. 편협된 생각은 고인 물과 같다. 흐르지 않아 고인 물은 썩지 않으랴. 편협된 생각에 머물러 감성이 시들지 않도록, 사물의 속내를 살피는 연습에는 결코 과함이 없으리라는 생각에 이른다.

젊은 품바의 얼굴에 설핏 스친 미소가 떠오른다. 그의 품새가 연출이었다면, 속고 있는 관객을 보며 만족한 미소를 지었을 그는 진정한 품바이다. 서녘이 노을로 붉게 타오르고 있다. 젊은 품바의 화장한 붉은색 볼을 떠오르게 하는 풍경이다. 불현듯 소년 품바의 구성진 소리가 듣고 싶다. 그가 무대에 올라 구성진 입담과 노래로 좌중을 휘어잡을 그날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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