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조바심이 몰려온다. 핸들을 거머쥔 손에서는 진땀까지 난다.

주행 신호등이 켜졌으니 당연히 앞으로 나가야 하건만 꼼짝 못 하고 정차되어있는 이 자리가 너무 갑갑하다. 앞과 뒤, 옆까지 꽉 막힌 진퇴양난의 신세인 걸 알면서도 고개를 길게 빼고 행여나 빠져나갈 틈이 나올지 기회를 탐해본다.

몇 번의 신호가 바뀌었음에도 내 앞에 정차한 된 차들은 움직일 기미가 안 보인다.

신호등 앞에서 몇 분의 기다림이란 왜 이리 지루한 걸까. 평소 조급한 성격도 아니건만 운전대만 잡으면 맘이 급해지고 여유가 없어지는 건 또 무슨 일인지. 급한 용무도 아닌 것을 하필 번잡한 시간에 나온 나 자신보다는 앞을 막고 있는 차들이 먼저 거슬리는 건 무슨 옹색한 심성일까.

신호등의 파란불이 눈앞에 드디어 가까이서 보인다. 이제는 가나 보다 하고 가속페달을 밟으려는 순간 벌써 황색 불이다. 갈까 말까 하는 선택의 귀로에서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여태껏 정차한 보상이라도 받을 양 앞차의 뒤꽁무니에 바짝 달라붙었다. 순간 신호등이 하필 내 앞에서 적색으로 바뀐다.

순발력을 발휘해 앞차를 따라 냅다 달렸지만 직진 주행은 거기까지다. 결국 오도 가도 못하고 교차로에서 사방의 눈총을 받는 신세가 됐다. 머리 위 신호등에 있던 위반 감지 카메라에서 플래시가 번쩍이며 불빛과 함께 그제야 정신도 번쩍 든다. 내일이면 날아들 신호위반 범칙금 납부서가 눈앞에서 펄럭이며 속에서 스멀스멀 부아가 치민다. 이미 저질러진 결과에 누굴 향해 화를 쏟아낸들 되돌까만 미적거린 앞차를 향해 자꾸만 볼멘소리가 나오고 밤새 내린 눈까지도 원망스럽다.

시간상으로 보니 정체된 구간에서 머물렀던 시간이 그리 많이 흘러간 것도 아니었건만 왜 그리 서두른 건지.

운전석만 앉으면 직진만 고수하며 선두에 서려는 욕망이 초래한 무모한 결과인 걸 누굴 탓하랴. 찬찬하지 못한 운전 습관은 적색 신호등 불빛에 반사되어 결국 시야를 더 시리게 한다.

삶에도 늘 전진만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비록 저 앞에 파란불이 켜져 있을지라도.

한 발짝 뒤로 물러설 때도 있고 우선 멈춤을 해야 할 때도 있거늘 왜 매사를 안달복달하며 여태껏 살아온 건지. 황색 신호등처럼 한 번쯤 멈춰서서 기다리는 여유도 필요하고 되돌아갈 줄 아는 회차도 있거늘 내 삶의 여정에는 빨간불과 파란불의 꼭짓점만 바라보며 달려왔다.

내가 먼저 차지한 길일지라도 더 급한 누군가에게 선뜻 내어주고 잠시 기다리는 배려와 아량이 있었다면 잠시 정체한다 한들 그리 답답하기만 했을까.

한해의 뒤안길이 앞서 달리려고 직진만 고수하며 숨차게 달려온 것 같아 쓸쓸하다.

내 삶의 새날 속에는 아무리 시간이 정처없이 흐른다도 후회라는 오점만은 남기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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