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이랬으면 참 좋겠다. 섣달은 한해의 끄트머리 달만은 진정 아니다. 희망을 준비하고 해 오름을 맞이하는 초석 달이라 이름하면 좋겠다. 애달파하지도, 회한의 눈물도 흘리지 말고 흐뭇하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해를 매듭지었으면 좋겠다. 세파에 헐떡이며 한숨짓던 암울한 현실 속에서 비록 이루지 못한 삶의 무거운 등짐을 아직도 내려놓지 못했다 해도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평안하다고 꼭 믿었으면 좋겠다. 다시오는 새해에는 희망찬 꿈을 향해 달리는 발걸음 먼저 빨라지고 매사에 감사하는 날이 많아 바빠지면 좋겠다.

도전의 발상을 묶어버리던 포기와 절망과 못난 자존심을 버리고 어떤 조건 속에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패기와 역동이 내 것이 되어 이상과 생각이 젊어지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 삶의 고갯마루에서 느닷없는 폭풍우를 만날지라도 도전하는 용기로 인내하며 당당하게 아침 해를 기다리는 진취적인 날이 새해엔 정말 많았으면 좋겠다.

마음이 울적하고 시려올 때면 포근한 외투 하나 걸친 후 사락사락 눈 내리는 창가에 앉아 차 한 잔 앞에 놓고 허접스러운 이야기를 몇 시간 이어나가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벗이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렇듯 허전한 누군가의 마음을 덥혀주는 따뜻한 마음의 주인이 이제 나였으면 좋겠다.

허름한 시장 구석진 곳에서 웅크리고 앉아 시들어버린 들나물 두어 가지 앞에 놓고 곱은 손을 비비던 노파의 애절한 눈빛을 무심히 지나치며 차디찬 땅바닥보다도 더 얼어붙은 심성이었음을 결국은 부끄러워하는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받은 작은 상처를 옹이처럼 품고 쉽게 도려내지 못하며 옹색하게 나이만 먹어가는 덜 여문 어른이 정말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바람결에 묻어오는 시끄러운 세상사(世上事)를 욕설과 비평에만 날을 세워 어쭙잖은 편견의 잣대로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참된 진실을 헤아릴 줄 아는 혜안과 평정심을 바탕으로 포용과 배려가 풍부한 정 많은 인격이 이제 나였으면 좋겠다. 소나무 정기가 청청하게 깃들고 산들바람이 산등성이를 쉬이 넘나드는 야트막한 동산, 그 안에 찾아드는 누구라도 포근히 품어주는 품격을 닮고 자연 앞에서 조악하게 덧칠하지 않는 심미안이 밝아지는 새해가 됐으면 좋겠다.

짜인 시간에 숨 돌릴 틈 없이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모든 일상 과감하게 내려놓고 노트 한 권, 연필 한 자루 달랑 들고 한적한 어디쯤에서 꽃과 나비와 햇살과 바람과 질펀하게 한 이레쯤 지내다 왔으면 진정 좋겠다. 그렇게, 그렇게 노닐 다가 작은 풀꽃도 길섶에서 만나고 풀잎 끝에 맺힌 이슬 보며 눈물도 글썽이다 심연의 감성에서 이끼 걷어낸 후 명주실 타래보다 더 부드럽고 분칠하지 않은 수수한 수필 몇 편을 밤새워서 지어낼 줄 아는 글쟁이가 되어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새해에는 정말 이랬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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