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사각지대, 大田의 모순] ④ 귀농의 기준을 다시 묻다…"대전은 농업하기 좋은 도시"
대전 농업인들, 농촌 아니라는 이유로 정부 지원 소외 경험 토로
농업융복합산업, 귀농 창업자금 등 제외… '농업인 맞나' 자조도
"중요한 건 주소 아니라 실제 농사 짓느냐" 호소

사진=함성곤 기자 sgh0816@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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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투데이 함성곤 기자] 대전(大田), 크고 넓은 밭이라는 지역의 명칭이 희미해지고 있다. 과학수도를 자처하고 꿀잼도시라는 새 명성을 쌓았지만, 지역명의 유래가 된 농업은 뒷전으로 밀린 지 오래다. 대전에도 1만여 농가가 있고 지역 면적의 10분의1에서 경작과 재배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농업 정책이 농촌에 방점이 찍히면서 대전은 국가 귀농통계에도 잡히지 않고 심지어 귀농 정책자금도 받을 수 없다. 지자체도 대전에 정착하려는 예비 농업인에게 구애의 손길을 보내지 않고 있다. 대전의 농민들은 지역의 농업 비전이 정부와 지자체의 무심 속에 빛을 잃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저출산에 광역시도 소멸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귀농은 대전이 미래를 준비하는 또 하나의 열쇠다. 충청투데이는 귀농의 관점에서 대전을 돌아보는 기획 ‘귀농 사각지대, 大田의 모순’을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대전은 도심과 농지가 가까워 분명 농업하기 좋은 도시입니다. 다만 읍·면에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정부 지원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아 제가 농업인이 맞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출신으로 대전 유성구에서 레드향 체험농장 ‘제제와 오렌지나무’를 운영하는 유태호(43) 대표는 자신의 귀농 경험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유 대표가 연구원 8년차에 "원하던 삶이 아니다"며 연구실을 떠나면서도, 농지가 넓은 도 단위 대신 대전을 농업지로 정한 이유는 자녀 교육과 도심 생활을 유지하고 싶어서였다.

대전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1000여곳에 달해 체험형 농업이라면 경쟁력이 충분할 것이라는 분석, 그는 유성구 외곽에 자리 잡았다.

유 대표가 농업인이 되기까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난관은 없었냐는 물음에 몇 년 전 준비했던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업융복합산업 인증을 꺼냈다.

인증 시 저금리 대출과 제품 컨설팅, 유통 상담 등을 받을 수 있는 사업인데, 인증 요건이 ‘읍·면’ 농촌지역에 한정돼 동 지역에서 농업을 하는 유 대표는 신청 자체를 할 수 없었다.

유 대표는 "당시 매출이나 다른 조건은 충족됐는데, 지역이 농촌으로 분류되지 않아 지원할 수 없었다"며 "반면 세종에서 하는 곤충 농업은 신청도 되고 지원도 받았다. 같은 농업이고 지역 차이밖에 없는데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이처럼 대전은 법령에서 농촌으로 정의한 읍·면 없이 동으로만 이뤄져 있다 보니, 타 지역과 비교해 정부 농업 정책에서 소외되는 일이 빈번하다는 설명이다.

13년의 사이클 선수 경력을 마치고 농업으로 인생 2막을 연 청년농 임다빈(31) 에코파머 대표도 "대전에서 귀농 지원이 있다는 얘기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며 "사회적 농업, 귀농 창업자금 등 다양한 정부 사업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제외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도시에도 농지가 있고, 농업인도 있는데 행정 경계만으로 지원을 끊어버리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 농가들은 정부의 귀농 등 정책 지원 대상을 읍·면으로만 한정하면 대전만의 농업 경쟁력이 퇴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전 중구의 송인상(61) ‘송박사네 블루베리’ 대표는 "중요한 건 주소가 아니라 실제 농사를 짓고 있느냐"라며 "농업경영체 등록 등 실제 영농 활동을 기준으로 귀농 개념을 재정의해야 도시형 농업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전의 한 청년농은 "대전 농업은 도심과 가까워 로컬푸드 등 유통이 용이하고 규모를 키우긴 어렵지만 역으로 예비청년농에겐 기회"라며 "정부와 지자체가 도시 개발, 첨단산업뿐만 아니라 대전 농업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함성곤 기자 sgh0816@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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