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최근 발생한 캄보디아 한국인 납치·감금·실종 사건들은 우리 외교 안보 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사건들은 단순한 ‘해외 실종’이 아니라 조직적 범죄 집단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중범죄라는 점에서 중대한 안보·인권 사안이다. 특히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자행된 범죄였지만, 우리 정부는 너무 안이하고 무책임하게 대응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준다.·
외교부와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캄보디아 내 한국인 납치·감금·폭행 신고 건수는 2022년 12건에서 2023년 220건으로 폭증했다고는 보도도 있다. 이 같은 폭증세에는 정부도 한 몫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들이 캄보디아에서 범죄에 노출되고 있는 동안, 정부는 이 부분에 대해 등한시 했다. 캄보디아 범죄 집단에게 한국은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준 것이다. 실제로 프놈펜 시내 카페에서 외출하던 한국인이 중국인·캄보디아인에게 납치돼 고문당한 사례가 최근 보도된 바 있다. 대전과 충북에서도 실종 신고가 접수된 상태다. 대전 경찰은 2월 이후 연락이 끊긴 30대 남성의 소재 파악에 나섰고, 출입국 기록과 외교부·캄보디아 당국과의 협의로 실종자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 사건 발생 8개월 동안 우리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충북에서는 20대 3명이 캄보디아에서 감금이 의심된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더욱이 최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한 의원은 감금 피해자 가족에게 현지 경찰이 ‘감금된 사진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는 충격적 증언을 내놓았다. 정부의 외교적 무책임에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14일 캄보디아 사건 관련 보고를 받고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신속·정확·확실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당연한 조치이지만, 조치에서 끝나지 말고 현장에서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행동으로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다. 이 책무는 국내 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적용되어야 한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외교 문제’의 테두리에 갇혀 해결해서는 안된다. 국외에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킨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이 국가를 믿고 신뢰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