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가족센터 면허과정 수료한 레모씨
운전 덕분에 밤중 아픈 아이 생명 구해
[충청투데이 김흥준 기자] “그날, 제가 운전할 수 없었다면… 제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요?”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레모(33) 씨는 이제 ‘운전’이라는 말에 남다른 감정을 갖는다. 지난해 논산시가족센터에서 운영하는 결혼이주여성 운전면허 취득반에 참여해 면허를 딴 그는, 단순한 기술 이상의 것을 얻었다고 말한다.
“늦은 밤이었어요. 아이가 갑자기 음식을 먹고 토하면서 의식을 잃을 뻔했죠. 인근 병원에서는 큰 병원으로 옮기라고 했는데, 남편은 출장 중이었고 저는 혼자였어요. 망설일 틈도 없이 차를 몰았죠. 한 시간 넘게 달려 대전의 대형병원에 도착했어요.”
그날 밤, 운전은 생명을 구하는 도구가 됐다.
논산시가족센터(센터장 이혜경, 건양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단순한 교통수단 이용을 넘어서, 결혼이주여성들의 위기 대응력과 자립 기반을 돕는 실질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바로 ‘운전면허 취득반’이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도로교통법과 실기 기술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한국어와 교통법규라는 이중의 장벽 앞에서, 각국 출신 이주여성들이 서로를 돕고 격려하며, ‘자신의 삶을 직접 운전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여정이다.
센터는 충남경찰청 치안정보과와 협력해 경찰관을 초청, 기출문제 풀이와 법규 해설은 물론 실제 시험에서 유용한 전략까지 교육한다. 대전 산내운전면허장과 연계해 센터 내에서 바로 필기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 언어 장벽과 이동의 부담을 최소화했다.
이 교육에는 베트남,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다양한 국적의 이주여성들이 참여한다. 모두가 각기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졌지만, 공통의 목표는 하나다. ‘가족을 지키고,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갖는 것’.
센터 관계자는 “운전면허는 단순한 취업 수단이 아닙니다. 이동권이자 생존권이며, 이주여성의 자립을 가능하게 하는 열쇠입니다. 이들의 변화는 사회 전체의 변화로 이어집니다”라고 강조했다.
레씨는 최근 가족과 함께 처음으로 충북 제천으로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운전대를 잡은 건 처음이었다.
“예전에는 어디를 가자고 해도 남편 없이는 꿈도 못 꿨어요. 지금은 아이들과 병원도 가고, 마트도 가고, 여행도 가요. 이제는 두렵지 않아요. 운전이 제게 자유를 줬어요.”
이 작은 변화의 씨앗은, 지역 사회가 함께 뿌린 것이다. 제도와 협력, 그리고 따뜻한 관심이 만들어낸 이주여성들의 삶의 전환점. 논산시가족센터의 ‘운전면허 취득반’은 지금도 여성들의 미래에 시동을 걸고 있다.
운전면허 필기시험 당일, 서로의 모국어로 시험 용어를 설명해주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A씨와 캄보디아 출신 B씨. 그들은 친구이자 선생님이다. 시험이 끝난 뒤, 두 사람은 꼭 끌어안았다.
“같이 합격하자고 매일 공부했어요. 이제 우리 둘 다, 운전할 수 있어요!”
김흥준 기자 khj50096@cctoda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