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강본 국립한국교통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에펠탑, 베르사유 궁전, 그랑팔레 등 도심의 랜드마크를 경기장으로 활용하면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2024년 파리올림픽이 17일간의 여정으로 막을 내렸다. 우리는 양궁, 사격, 유도, 펜싱, 배드민턴, 복싱, 수영, 탁구, 태권도 등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면서 스포츠 강국으로서 체면을 살렸다.

단체 종목의 출전이 줄어들면서 조용한 올림픽이 되리라는 예상은 조금 빗나갔지만 비인기 종목의 서러움을 극복하고, 어렵게 대회를 준비한 선수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게 됐다. 그러나 좋은 성적과 흥행, 영웅의 등장이라는 긍정적 결과와 달리 절규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린다.

올림픽을 앞두고 금메달 5개와 종합순위 15위권을 목표로 설정한 대한체육회에 대한 신뢰성도 타격을 입었다. 소박한 목표에 이유가 있겠지만 엘리트 체육의 부활을 위해 목표를 하향 조정했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 선수들에 대한 객관적 평가 시스템의 붕괴와 정보의 부족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스포츠 선진국은 단순하게 메달 숫자로 평가되지 않는다. 선수 육성의 체계성과 합리성이 전제된, 공정한 행정 시스템의 선진화가 우선이다. 정치에 몰두하면서 선수의 아픔과 고통에는 관심 없는 체육단체는 반성해야 한다.

늘 그랬듯이 올림픽은 새로운 스포츠영웅을 탄생시킨다. 이번 올림픽에도 수많은 영웅이 새벽 시간, 국민을 설레게 했다. 우리는 영웅들의 표정, 몸짓, 손동작, 말 한마디에도 주목하게 된다. 기다림과 떨림, 좌절, 극복, 땀, 눈물 등 그동안의 모든 시간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회 기간에 있었던 몇몇 영웅들의 절규는 기성세대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영웅들의 분노와 간절함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특정 단체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모든 구조를 하루아침에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염치’라는 기준으로 일련의 문제를 원점에서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우리에게 영웅은 없다.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을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메달과 상관없이 즐거움의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즐거워할 수도 없다. 메달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저변확대이기 때문이다. 생활체육의 기반 없는 비인기 종목의 올림픽 메달은 허상이다. 단 ‘17일만’의 짧은 관심이 아니라 꾸준하고 지속 가능한 관심이 있을 때 새로운 영웅들이 만들어지고 보호된다.

몇몇 선수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스포츠 행정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확대되기 전에 모든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 분명한 것은 ‘소수만의 이익을 위해 영웅들에게 재주를 부리게 하는 상황’은 용납될 수 없다. 우리도 운동선수가 직업이 아닌, 다양한 직업을 가진 운동선수 육성이 필요한 이유이다. 4년 뒤 LA 올림픽에서는 감동과 희망만이 남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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