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하다 2007년 문신업계 발 들여
흉터 덮기 등 작업하며 사명감 발휘
4대 보험 가입 등 근로자 권리 원해
문신, 건강한 문화로 발전되길 바라

유주 타투이스트. 유주 제공
유주 타투이스트. 유주 제공
유주 타투이스트가 작업한 소나무 문신. 유주 제공
유주 타투이스트가 작업한 소나무 문신. 유주 제공
유주 타투이스트가 작업한 ‘안동김씨’ 한글 문신. 유주 제공
유주 타투이스트가 작업한 ‘안동김씨’ 한글 문신. 유주 제공

[충청투데이 김세영 기자]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과거에는 부모로부터 받은 몸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도리라 여겼다. 이에 문신은 오랫동안 금기 대상이었고 범죄와 일탈의 상징으로 치부됐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오히려 부모의 이름을 몸에 새겨 효를 표현하고, 트라우마로 남은 흉터를 덮는 치유 수단으로 활용한다. 이렇듯 문신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지만 불법이라는 낙인에 위생과 안전, 직업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 이에 충청투데이는 33년 만에 제도 합법화를 앞둔 지역 문신업계를 조명하고, 이들이 꿈꾸는 미래를 들여다봤다.<편집자주>

 

“한국에서는 그림으로 돈 벌기 쉽지 않잖아요. 그림을 그려서 바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직업이 뭐가 있을까 찾다가 타투이스트를 발견했어요. 당시에는 배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어 도제식으로 익힌 뒤 시작했죠.”

대전에서 활동하는 유주 타투이스트는 2007년 처음 문신업계에 발을 들였던 순간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서울 이태원에 있던 스승 밑에서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우던 시절, 그는 취미였던 미술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기뻤다. 한 번 새기면 돌이킬 수 없는 작업인 만큼 수없이 연습하고 위생 점검을 반복하며 필드에 나갈 준비를 했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에 사명감이 더해지기 시작한 것도 손님을 맞이하면서다. 고무판이 아닌 살과 살이 맞닿는 일이 차근차근 쌓이면서 사람들의 사연과 이야기 또한 유주의 마음에 하나씩 새겨졌다.

“어느 날 한 손님이 흉터를 가리고 싶다며 찾아왔어요. 어릴 적 몸에 뜨거운 물이 담긴 커피포트가 떨어져 화상을 입었는데 흉터가 남아 반팔을 입어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울퉁불퉁한 흉터 위 작업은 고난도라 평소라면 고개를 저었겠지만, 손님의 사연을 들은 이상 모른 척 넘어갈 수 없었다. 무엇보다 “저는 괜찮은데 어머니가 뒤돌아 계신 사이 발생한 일이라 흉터를 볼 때마다 속상해하세요. 그게 마음이 아픕니다”는 말 한마디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고르지 못한 피부를 어떤 그림으로 덮을까 고민하다가, 나무껍질이 떠올랐어요. 마침 손님 태몽도 소나무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소나무 문신을 새겼죠.”

유주 타투이스트가 작업한 한글 문신. 손님 부모님의 성함을 부모님 필체로 새겼다. 유주 제공
유주 타투이스트가 작업한 한글 문신. 손님 부모님의 성함을 부모님 필체로 새겼다. 유주 제공
유주 타투이스트가 작업한 한글 문신. 유주 제공
유주 타투이스트가 작업한 한글 문신. 유주 제공
유주 타투이스트가 작업한 한글 문신. 유주 제공
유주 타투이스트가 작업한 한글 문신. 유주 제공

유주는 손님이 과거의 아픔을 털어버리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신중히 작업했다. 작지 않은 크기의 문신이라 시간과 품이 많이 들었지만, 작업 이후 손님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 한 통에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손님이 소나무 문신을 어머니에게 보여 드렸는데 ‘잘했다’며 우셨대요. 그러면서 ‘이제 당당히 반팔을 입고 다닐 거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큰 감동과 사명감을 느꼈어요. 벌써 13년 전인데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곁을 떠난 부모를 그리워하며 몸에 새기고 싶어하는 이도 있었다. 더이상 볼 수 없게 된 얼굴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에서다.

“한 손님이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을 몸에 새기고 싶다며 사진을 들고 방문하셨어요. 그림 밑에 아버지 성함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한글 문신이 없을 때라 난감했죠.”

손님의 의뢰를 받은 유주는 자료를 참고하기 위해 인터넷에 한글 문신을 검색했지만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었다. 한자는 새겨도 한글 문신을 새기려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였다. 대부분 영어 레터링 문신이었고 어렵게 한글 문신 자료를 찾으면 궁서체로 쓰인 딱딱한 것들 뿐이었다.

“궁서체로 작업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내 문신은 사인처럼 멋지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하다 그림과 어울리는 한글 문신을 만들어 해드렸는데 좋아하시더라고요. 그 작업 이후 한글 문신을 찾는 손님이 늘었죠.”

K팝 등 한류열풍이 불면서 한글 문신은 점차 새로운 장르로 발전했다. 이제는 그를 찾는 손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일 정도다. 자랑스러운 한글을 많은 이들의 몸에 새기며 그는 일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갔다.

손님들로부터 감사 편지와 전화를 받을 때마다 마음이 벅차올랐다. 문신은 이제 그의 삶이자 정체성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그의 직업을 인정하지 않는다. 어찌됐건 문신은 한국에서 불법이며 언제든 신고 당할 수 있는 범법행위다. 냉정한 현실은 그를 음지로 깊숙히 밀어 넣었다. 삶과 현실의 괴리는 그의 목을 서서히 조였다.

“예약되지 않은 누군가가 작업실 문을 두드리면 두려웠어요. 경계를 할 수 밖에 없었고 문도 열지 못했죠. 주변에서 신고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967 타투이스트. 967 제공
967 타투이스트. 967 제공
967 타투이스트 작업한 문신. 967 제공
967 타투이스트 작업한 문신. 967 제공
967 타투이스트 작업한 문신. 967 제공
967 타투이스트 작업한 문신. 967 제공
967 타투이스트 작업한 문신. 967 제공
967 타투이스트 작업한 문신. 967 제공

이와 같은 고충은 유주 뿐만이 아닌 동종업계 모두가 느끼는 것이다.

7년 경력의 대전 타투이스트 967은 “위생적으로 스튜디오를 관리하고, 손님들이 만족할만한 작업을 해도 범법행위이기 때문에 두려움을 안고 일해요. 그냥 지나가다가, 금액을 지불하고 싶지 않아서, 동종업계 사람이 악의적인 마음으로 신고하는 사례가 적지 않거든요.”

그렇기에 문신사법 합법화는 이들에게 의미가 크다. 타 직업군과 같이 세금을 내고, 4대 보험을 가입하고, 은행 대출 등 근로자로서 당연한 권리를 찾을 수 있어서다.

967은 “‘불법이라는 낙인이 싫으면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보기 안 좋다는 수군거림과 시선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 문화를 진심으로 애정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제 작업으로 누군가 기뻐하고 위안받는 걸 보면 그럴 수밖에 없어요. 부디 양지에서 세금을 납부하고 제도권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문신이 건강한 문화로 발전되길 소망해요.”

문신이 합법화가 되면 지역 업계도 다시 숨을 쉴 수 있을 거란 기대도 떠오른다.

유주는 “수도권에 비해 충청권은 타투 시장이 많이 위축돼 있어요. 합법화 이후 지역 업계가 활성화됐으면 좋겠어요. 대전이 빵의 성지가 된 것처럼, 관광하러 왔다가 좋아하는 빵이나, 한글 문신을 받는 문화가 자리잡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서울에 가지 않아도 지역에서 충분히 그런 일이 가능한 미래가 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김세영 기자 ksy@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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