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舊동양척식주식회사 위치
대전형무소 우물과 망루도 중요
충북 조선식산은행 충주 지점
충남 윤봉길 유품 등 유산 최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옛 대전형무소 우물의 모습. 대전시 제공, 보문산 근대식 별장 전경. 사진=김세영 기자, 문충사. 대전시 제공. 헤레디움 전경. CNCITY마음에너지재단 제공. 
(왼쪽부터 시계방향) 옛 대전형무소 우물의 모습. 대전시 제공, 보문산 근대식 별장 전경. 사진=김세영 기자, 문충사. 대전시 제공. 헤레디움 전경. CNCITY마음에너지재단 제공. 

[충청투데이 김세영 기자] 일제의 억압과 수탈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이한 지 어느덧 80년.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그날의 흔적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한강 작가의 물음 앞에서, 모두가 ‘그렇다’고 답할 수 있게 된 지금, 역사가 지닌 가치는 어느 때 보다 선명하다. 빛바랜 광복의 유산이 다시 한번 반짝일 수 있도록 충청투데이가 지역 국가유산을 조명하고 의미를 되짚어봤다. <편집자 주>

충청권 근·현대 국가유산이 역사의 숭고한 가치를 후대에 전하고 있다.

13일 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이날 기준 충청권에는 보물·사적·천연기념물·국가등록문화유산·시도등록문화유산 등 17개 종목의 2317개 국가유산이 존재한다.

이 중 대한제국시대·일제강점기 당시 만들어진 국가유산은 133개이며 지역별로 대전 21개·세종 7개·충북 38개·충남 67개가 있다.

구체적으로 대전에는 △국가등록문화유산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지점, 대전 충청남도청 구 관사 1·2·5·6호와 부속창고 △대전시등록문화유산 구 대전형무소 우물, 대전 보문산 근대식 별장 △대전시 문화유산자료 문충사, 구 대전형무소 망루 △대전시기념물 단재신채호선생생가지 등이 있다.

이 중 대전형무소 우물과 망루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돼 고초를 겪었던 대전형무소의 중요한 흔적이다.

1919년 설치된 대전감옥소는 1923년 대전형무소로 개칭된 뒤 1939년 대규모 시설로 확장·준공됐다.

애국지사 안창호, 여운형, 김창숙 등이 옥고를 치렀으며 광복 이후에는 대전지역 대표 화가 이응노가 수감돼 고초를 겪었다.

1961년 대전교도소로 또 한 번 개칭된 뒤 1984년 유성으로 이전하면서 구 대전형무소 담장과 본관은 철거됐다.

현재는 대전형무소 우물과 망루만이 역사의 비극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흔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전형무소 우물은 대전시등록문화유산으로 처음 등록된 문화유산이란 점에서 더욱 뜻깊다.

세종에는 광복·독립운동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 국가유산이 아직 없으며, 충북에는 △국가등록문화유산 구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 청주 문화동 일·양 절충식 가옥이 있다.

구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은 일제강점기에 경제적 침략의 역할을 했던 은행건물로 1933년 건립됐다.

일제의 식민 지배를 상징하는 금융시설이며 충주에서 첫 번째로 등록된 국가등록문화유산이다.

충청에서 유일하게 독립기념관이 있는 충남에는 △보물 윤봉길의사 유품, 안중근의사 유묵, 김구 서명문 태극기 △충남도기념물 예산호서은행본점 △국가등록문화유산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태극기목판, 대동단결 선언문서, 도산 안창호 일기 등 충청권에서 가장 많은 국가유산이 존재한다.

지역의 한 역사단체 관계자는 “윤봉길 의사와 신채호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목숨을 바칠 만큼 광복을 원했지만 끝내 그날을 보지 못하고 순국했다. 만약 이들이 광복의 현장에 있었다면, 그리고 지금의 한국을 본다면 어떤 심경일지 생각하게 된다”며 “김구 선생이 서명한 태극기에는 해방 후 문화강국을 이루고자 했던 꿈이 담겨 있다. 오늘날 한국이 K-문화를 이끌며 그 이상을 현실로 만든 시대를 살고 있기에, 광복 80주년의 의미가 더욱 깊게 다가온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세영 기자 ksy@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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