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면 무용지물 도로 차선]
지자체, 재정 자립도 낮아 저가 낙찰
전문가 “위험 구간 고굴절 적용 필요”
돌출 차선 설치 검토 요구 목소리도

차선. 클립아트 코리아 제공. 
차선. 클립아트 코리아 제공. 

[충청투데이 함성곤 기자] 비가 오는 날이면 차선이 보이지 않는 ‘스텔스 차선’ 문제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단순 시공 문제가 아닌 예산 부족과 제도적 허점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김진태 한국교통대학교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야간이나 빗길에서 차선이 보이지 않는 현상은 단순한 시야 저하를 넘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교통안전 이슈"라며 "기술적 해법이 있음에도 예산 부족과 행정 구조의 한계로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차선이 잘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도로 위 빗물이 얇은 막을 형성하면서, 차량 전조등의 빛이 차선 도료 내 유리알에 제대로 반사되지 못하는 구조가 꼽힌다. 굴절률이 높은 유리알이나 우천형 비드를 사용하는 방안이 오래전부터 제시됐지만, 높은 단가 탓에 예산 앞에서 번번이 좌초되는 실정이다.

김 교수는 "지자체는 재정 자립도가 낮고, 대부분 저가 낙찰 방식으로 입찰이 이뤄져 업체들은 결국 저렴한 자재를 쓸 수밖에 없다"며 "결국 예산 문제로 시민 안전이 희생되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강완혁 도로교통안전기술협회장도 "차선 관리는 지자체의 의무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며 "처음부터 내구연한이 긴 도료를 쓰거나, 차량 통행이 많은 위험 구간만이라도 고굴절 유리알을 적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만 차선 도료의 문제라고 접근하기보다는 아스팔트의 배수 능력이 얼마나 확보되고 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빗길 속 보이지 않는 차선의 해결 대책으로 차량 통행이 잦은 도로부터 시공 방식을 점차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 회장은 "유럽은 시인성이 낮은 구간에 ‘돌출 차선’을 설치해 차량 진동과 소리로 시야 확보를 보완하고 있다"며 "국내도 위험 구간에 한해 이런 방식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도 "차선을 하나로 도색하는 방식 대신, 여러 개의 덩어리로 표기해 물이 고이지 않도록 하는 시공법도 있다"며 "물속에서도 유리알이 노출돼 반사 효과를 확보할 수 있는 구조지만, 결국 예산과 지자체 의지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더불어 관리 책임이 지자체와 경찰청으로 이원화돼 있는 구조도 개선 과제로 꼽힌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노면 보수·관리는 지자체가 맡고 있지만, 노면 표시 변경이나 규제 권한은 경찰에 있어 관리 주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관리되지 않은 차선으로 사고가 나도 운전자 부주의로 처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지자체나 경찰의 책임도 있다"며 "도로교통 관리 권한을 자치경찰로 일원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밖에 전문 인력에 대한 검증 절차와 제도 기반이 부족한 점도 개선 과제로 지적된다.

강 회장은 "현재는 별도의 자격 없이 누구나 차선 시공 입찰이 가능해 품질 확보가 어렵다"며 "일본처럼 기능사 자격이 없는 사람은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함성곤 기자 sgh0816@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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