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목숨으로 지킨 조국, 그날의 경찰관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강경서 경찰관 전투 참여
북한군의 남하 5일 이상 지연시키며 위기 막아내
논산경찰서 정문 앞 산화한 83명의 경찰 기억해

클립아트코리아제공.
클립아트코리아제공.

[충청투데이 김흥준 기자] 6·25 전쟁이 발발한 지 75년이 되는 6월. 우리는 또 한 번 전쟁의 상흔을 돌아보고, 그 속에서 피어난 고귀한 희생을 기리게 된다. 충남 논산의 순국경찰관 합동묘역에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83인의 경찰관이 잠들어 있다. 그들은 1950년 7월, 강경 전투에서 조국의 마지막 방패가 되어 싸웠고, 끝내 산화했다. 그들의 이름 없는 용기와 뜨거운 신념은 오늘날 우리의 자유와 평화의 초석이 됐다.

▲순국경찰관 합동묘지에 세워진 충혼탑. 사진=김흥준 기자
▲순국경찰관 합동묘지에 세워진 충혼탑. 사진=김흥준 기자

◆강경 전투, 조국 수호의 최전선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불과 몇 주 만에 한반도 전역은 참혹한 전쟁의 화염에 휩싸였고, 남한의 방어선은 차례로 무너져 내렸다. 충청권 남부와 전라도를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였던 강경은 전쟁 초기, 적의 진격을 막기 위한 마지막 보루였다.

강경경찰서<現논산경찰서> 소속의 경찰관들은 당시 열세한 병력과 장비 속에서도 사력을 다해 방어에 나섰다. 정성봉 경찰서장은 미군 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전주로 일시적으로 철수했으나, 강경의 위급한 상황을 듣고 죽음을 각오한 채 강경으로 복귀했다. 그는 "강경을 지키지 못한다면 경찰의 명예도, 내 목숨도 없다"는 말을 남기며 동료 경찰들과 함께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다.

그의 결단에 따라 83명의 경찰관들이 자리를 지켰고, 맨몸으로라도 조국을 지키겠다는 각오로 적군과 맞섰다. 탄약과 식량은 빠르게 바닥났고, 포화 속에서 경찰들은 하나둘 쓰러졌다. 그러나 그들은 단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충혼탑에는 83명의 순국경찰관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사진=김흥준 기자
▲충혼탑에는 83명의 순국경찰관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사진=김흥준 기자

◆5일의 저지, 전세를 바꾸다

강경 전투는 단순한 전투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을 벌기 위한 절망 속의 결사전이었다. 경찰관들의 처절한 저항은 북한군의 남하를 무려 5일 이상 지연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시간은 곧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는 결정적인 골든타임이었다.

전문가들은 이 5일이 없었더라면, 낙동강 전선조차 장악당해 대한민국은 국가 존립의 기로에 놓였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즉, 강경에서 경찰관들이 흘린 피 한 방울 한 방울이 결국 이 나라를 지켜낸 것이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논산경찰서 정문앞에 세워진 6.25추모 기념비. 사진=김흥준 기자
▲논산경찰서 정문앞에 세워진 6.25추모 기념비. 사진=김흥준 기자

◆순국경찰관 합동묘역, 그들의 숨결이 깃든 곳

1953년, 논산시 등화동에 마련된 순국경찰관 합동묘역은 강경 전투에서 산화한 경찰관 83명의 유해를 모신 성역이다. 이곳은 단순한 묘지가 아니다. 그들의 영혼이 깃든 민족의 성지이자,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역사적 기억의 현장이다.

매년 7월 17일 이곳에서는 추모제가 열리며, 순국경찰관들의 넋을 기리는 시간이 마련된다. 그러나 이 조용한 공간이 지금까지 국민적 관심에서 다소 소외되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최근 논산 순국경찰관 합동묘역을 ‘국가관리묘역’으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운영을 활성화하기 위한 협약이 체결되면서, 이 묘역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 협약은 단지 행정 절차의 의미를 넘어서, 그들의 정신을 오늘날 우리 사회에 되살리는 첫걸음이다.

◆이름 없는 영웅들, 그 정신을 계승하자

강경경찰서<現논산경찰서> 경찰관들의 희생은 단지 과거의 영웅담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계승해야 할 정신적 유산이다.

그들은 “나라를 위해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를 행동으로 보여준 사람들이었다. 가정도, 미래도, 심지어 생명까지도 뒤로하고 오직 조국을 선택한 이들의 결단은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하고, 후세에게 반드시 전해야 한다. 그것은 기억을 넘어선 실천, 즉 나라를 지키는 사명감을 우리 스스로 삶 속에서 되새기는 일이다.

◆75년이 흘렀지만, 그들의 피는 아직도 강경에 흐른다

전쟁의 참혹함은 시간이 흐르며 희미해질 수 있지만, 고귀한 희생의 가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1950년 강경의 뜨거운 여름날, 83인의 경찰관들이 남긴 발자취는 지금도 이 땅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들의 피와 땀, 그리고 숭고한 정신은 여전히 강경의 들녘과 논산의 하늘 아래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는 일, 그것은 곧 더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다가오는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75주년.

우리는 되묻는다.

그날, 강경경찰서 경찰관들이 목숨으로 지킨 조국.

오늘의 우리는 그 숭고한 희생 앞에 과연 부끄럽지 않은가.

기억하라, 그날의 강경을.

전쟁은 막지 못했지만, 나라를 지켜낸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있다.

김흥준 기자 khj50096@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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