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장기적 울분 상태라는 설문 결과는 충격적이다. 응답자의 12.8%는 ‘높은 수준의 심각한 울분’을, 이들을 포함한 54.9%는 울분의 고통이 지속되는 ‘장기적 울분 상태’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의 전반적인 정신건강 수준을 묻는 항목에 응답자들의 48.1%는 ‘좋지 않다’고 답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의 건강재난 통합대응을 위한 교육연구단이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정신건강 증진 관련 조사에서다.

무엇이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저해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쟁과 성과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37.0%), ‘타인·집단의 시선과 판단이 기준이 되는 사회 분위기’(22.3%)가 주 원인으로 꼽혔다.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경쟁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초등학교 의대 준비반이 생길정도로 학벌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성적지상주의는 대학까지 이어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기업에 입사해서도 실적을 내지 못하면 곧장 밀려나게 된다. 학교에서, 직장에서의 경쟁은 스트레스를 낳기 마련이다. 울화통이 터지는 까닭이다.

한국의 정치사회 사안별로 울분의 정도를 측정한 결과가 주목된다. ‘입법·사법·행정부의 비리나 잘못 은폐’로 울분을 느꼈다는 비율이 무려 85.5%에 달했다. ‘정치·정당의 부도덕과 부패’(85.2%)가 뒤를 이었다. 도덕적이어야 할 3개의 국가 권력기관이 저지르는 각종 비리를 목도할 때 마다 국민들은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치인과 정당의 행태는 또 어떤가. 국리민복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개인영달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 극심한 진영대결은 국민들을 편 가르고 말았다. 이런 현상은 12·3계엄사태이후 더욱 심해졌다.

국민들을 울분상태로 만든 정치권의 책임이 결코 작지 않다. 따라서 누구보다 정치권이 이번 조사결과를 뼈아프게 받아들여야한다. 국민들도 눈높이에 맞지 않는 정치인, 비리연루 정치인은 가차 없이 심판해야 마땅하다. 의료적 접근만으로 국민들의 정신건강 수준을 높일 수 없다. 건전한 사회 조성이 그래서 긴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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