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 수주 매달리는 연구자들]
과도한 성과 압박으로 본 목적 상실
과제 따기 전략마련에 시간 소모돼
출연금 비중 확대·자유과제 활성화必

R&D. 그래픽=김연아 기자.
R&D. 그래픽=김연아 기자.

[충청투데이 조정민 기자] 성과 중심의 연구 경쟁력 강화를 취지로 도입된 연구과제중심제도(PBS)가 오히려 과학기술 연구 생태계를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과학기술계 안팎에서는 과제 수주에 쏠린 PBS 구조가 장기적·창의적 연구를 위축시키며 과도한 성과 압박으로 본래 목적을 상실했다고 비판한다.

도입 초기는 자율성과 책임을 통한 연구 효율성 제고가 기대됐으나 시간이 흐르며 ‘성과 중심’ 논리에 과제가 왜곡되기 시작했다.

연구 현장에서는 과제를 수행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다음 과제를 따기 위한 전략 마련과 행정 대응에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고 토로한다.

단기성과에 집중된 과제가 반복되고,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구조로 도전적인 연구를 점점 밀어내게 된다는 것이다.

이어확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PBS가 연구의 질보다 행정력, 정치적 감각에 좌우되도록 만들어버렸다”며 “정량 성과 위주 평가로 인해 논문 쪼개기, 사업화 지표 부풀리기 등이 빈번해졌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문화도 형성됐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특정 연구그룹이 과제 수주 노하우와 정부 예산 흐름에 정통할수록, 유리한 구조가 고착되며 신진 연구자 진입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설명이다.

또 장기적이거나 도전적인 연구는 기피되고 형식적인 논문 발표와 특허 출원으로 성과 수치를 맞추는 데에만 집중되는 상태다.

결국 기관 내부에서도 협력보다는 경쟁이 우선시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기관 기본 예산인 출연금 비중이 낮은 연구소일수록 상황은 심각하다.

PBS 의존도가 커질수록 인건비조차 과제 수주에 달려 있게 돼 연구자들은 과학자가 아닌 ‘연구비 영업사원’ 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자조 섞인 반응도 적지 않게 나온다.

이는 연구의 지속 가능성까지 위협한다는 우려로도 이어진다.

제도 도입 20년이 지난 지금, 계속되는 비판에 정부는 최근 과제 대형화 등의 방식을 제시하며 일부 제도 개선에 나섰다.

하지만 연구 현장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전환 없이는 연구 생태계 회복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출연금 비중 확대, 자유과제 활성화, 성과 평가 방식 개선 등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요구한다.

과학기술계 한 연구자는 “기초연구나 장기 과제는 실패하는 과정 속에서 얻는 것들이 더 많다. 이 모든 과정을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줘야 한다”며 “출연금의 50% 이상 기본 연구비를 보장하고 나머지는 정부 지정 과제나 자유과제로 유연하게 운영해야 연구 몰입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정민 기자 jeongmin@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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