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문화신문

▲ NEB VERONIKA 넵베로니카
▲ NEB VERONIKA 넵베로니카

다문화국가 러시아의 효문화와 가족의 중요성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독특한 나라로, 문화적으로도 양쪽을 아우르는 미묘한 특성을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를 단일 민족 국가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러시아는 190개 이상의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 다문화 국가이다.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제국주의와 확장을 통해 다양한 민족을 포용했으며, 그로 인해 여러 문화와 전통이 섞여 있다. 러시아는 민족 간 상호 이해를 촉진하고, 다문화 교육을 통해 통합을 이루려는 정책을 시행해왔다.

러시아는 동아시아 국가들처럼 전통적으로 강한 효를 강조하지는 않지만, 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효를 강조한다. 이는 다양한 민족들이 자신의 문화와 풍습을 보존하면서도, 가족과 연장자에 대한 존중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점에서 나타난다.



전통적인 러시아 가정에서 나타나는 어르신에 대한 존경

러시아에서는 연장자에 대한 존경과 상호 지원이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전통적으로, 부모와 조부모는 도덕적 가치와 가족 전통의 수호자로 여겨졌고, 젊은 세대는 부모의 충고와 훈계를 귀담아 듣는다. 또한 조부모는 손자의 양육을 도우며 가족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소련 붕괴 후 시장경제로의 전환과 개인주의 확산으로 전통적인 가족 구조는 변화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대도시로 이주하거나 해외로 나가면서 부모님과의 관계가 멀어졌지만, 여전히 연장자에 대한 존중은 중요한 규범으로 남아 있다. 이는 재정적 지원과 공동 거주와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연장자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자, 그들을 돌보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로 간주된다. 노인들은 여전히 중요한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유지하며,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젊은 세대는 연장자에게 자리를 양보하거나 도움을 주는 사회적 관습이 있다.



러시아 내 소수 민족들의 효문화

전통적인 러시아인과 러시아 내 소수 민족 간의 효문화는 일부 유사점과 차이점을 보인다. 러시아의 체첸, 다게스탄, 잉구세티아와 같은 카프카스 지역의 가정은 여전히 가부장적 전통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으며, 가족의 결정권은 대개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가진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여러 세대가 함께 거주하며, 젊은 세대가 연장자를 존경하고 그들을 물질적, 육체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투르크 민족과 시베리아 토착민들(야쿠트, 칸티, 만시 등)은 연장자에 대한 존경을 문화적 가치로 삼으며, 이들은 전통적인 지식과 삶의 방식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면, 도시화와 세계화의 영향을 받은 일부 러시아의 대도시에서는 가족 구조가 변하면서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치가 완화되었다. 러시아는 다문화적 국가이기 때문에 연장자에 대한 존경과 가족 내에서의 상호 지원은 문화와 민족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전통적인 러시아 가정과 소수 민족들 모두에서 연장자에 대한 존경은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남아 있으며, 이는 가족과 세대 간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기초가 된다. 세계화와 도시화가 러시아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지만, 효문화의 핵심 가치인 연장자 존경은 여전히 많은 지역과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NEB VERONIKA 넵베로니카
 

▲ 결성면, 효자 장명익과 아내 배씨부인의 정려 (홍성군 결성면 홍남서로 783)

전국 효 문화유산 탐방

 

전국 효 문화유산 탐방 결성면, 효자 장명익과 아내 배씨부인의 정려 (홍성군 결성면 홍남서로 783)

장명익(張溟翊)과 배씨(裵氏) 부부의 본관은 확실히 알 수 없다. 장명익과 배씨부인은 어릴 때부터 서로의 집안에서 성실히 일하고 부모님께 효도했다. 장성하여 혼인하였으며, 어릴 때의 성품은 변함이 없어 부부끼리는 공경하고 시부모님을 정성껏 섬기고, 슬하의 딸에게는 효행을 가르쳤다.

장명익의 부모님이 병에 걸렸는데 매일 병간호를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병환이 깊어지자 장명익이 스스로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부모님 입에 흘려 넣었다. 그러나 그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끝내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를 때에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니 묘 앞에 풀이 자라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장효자(張孝子)’라고 칭송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장명익도 병에 걸려 누웠다. 배씨는 사방에 약을 구하여 치료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위급할 때 스스로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장명익에게 먹이니, 장명익은 5년을 더 생존하였다. 5년 후 장명익이 사망하자 배씨부인은 1년 뒤 약을 먹고 자결했다.

딸 또한 효녀였는데 딸이 14살에 어머니가 병에 걸렸다. 가세가 많이 기울어 약을 제대로 쓸 수 없었는데, 딸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어머니께 먹였다. 그러자 어머니가 소생했다.

이 효행은 당시 암행어사 박우원(朴祐源) 1779(정조 3)이 상소를 올리고 1788년(정조 12)에 장명익과 배씨에게는 정려가 내려지고 딸에게는 효녀로 포상이 내려졌다. 출처: 한국효문화자료보감 내포지역편

▲ 꿈빛이와 떠나는 효문화 여행 칭찬·감사 실천 사례 ④ 글·그림 : 정지성
▲ 꿈빛이와 떠나는 효문화 여행 칭찬·감사 실천 사례 ④ 글·그림 : 정지성
▲ 꿈빛이와 떠나는 효문화 여행 칭찬·감사 실천 사례 ④ 글·그림 : 정지성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