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연희과 교수
서로 다른 예술 분야, 학문, 그리고 기술의 융합은 작품 제작에 있어 새로운 아이디어와 접근 방식을 창출하고, 문화의 융합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 간의 소통과 공감을 증진하는 역할을 한다.
그 때문에 예술 분야에서는 오래전부터 타 예술 장르와의 융합의 중요성을 인식해왔다.
과거 한국만 보더라도 중국,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 자연스럽게 융합을 이어왔고, 각 나라 고유의 예술로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한·중·일의 교류는 점차 서양과의 교류로 확장됐고, 근래에는 서양 문화에 한국만의 독특한 요소를 결합해 한류라는 새로운 문화 현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근래 전통 예술 중 공연 예술을 접목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과거와 달리 대부분 기존 연행을 고수하거나 유지한 채 작품 제작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최근 K-pop과 같은 공연 예술에서 전통을 차용한 장면들만 보더라도 대부분 전통 예술이 단순 소재로만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상황의 지속은 앞으로 전통 예술이 단순히 활용 요소로만 남을 위험을 의미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현 상황에서 국·도·시립과 같은 공공 지원을 받는 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전통 예술의 전통성과 고유성을 담은 수준 높은 전통공연과 함께, 전통 예술을 분석하고 현대적 해석을 통한 전통예술분야만의 새로운 작품 개발을 동시에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제75회 대전시립무용단 정기공연 ‘로미오와 줄리엣 Ⅱ 유랑과 예랑’은 한국전통무용계에 의미 있는 한 발을 내딛었다고 생각된다.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었지만, 각색과 연출에 활용된 대부분의 요소는 분명 한국적인 정서를 지닌 작품으로, 타 예술장르에서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전통예술 고유의 ‘춤극’이었다.
본 작품은 대전이라는 지역과의 공통점을 찾아 글로벌과 로컬의 융합인 ‘글로컬’ 접근 방식을 활용하여 작품을 제작했다. 이탈리아 카스텔베키오 전망대와 대전의 도솔산, 아디제 강과 갑천 등 유사한 의미를 지닌 지역을 배경으로 설정했고,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정령 등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포함해 각 장면마다 한국의 전통예술을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도록 각색했다.
연희전공자 입장에서 주목했던 부분은 한국 무용을 춤극으로 연출하기 위해 연희종목을 활용한 방식이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줄타기의 어릿광대가 주로 활용됐다. 이 과정에서 재치 있고 해학적인 재담과 몸짓을 통해 관객들과 소통한다. 본 작품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녹아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 원작의 서사를 무용으로만 풀어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장면들을 줄광대의 재담을 활용해 장면을 환기시켰다.
전쟁과 같은 장면에서는 농악의 진법과 한국 무용의 정적인 움직임 등 각 장르가 지닌 장점을 잘 활용했고, 두 전통 장르를 더해 새로운 양식을 찾아 장면을 구성하려는 노력도 엿보였다. 무용에 연희를 접목해 자연스러운 연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부터 무용과 연희를 함께 접해왔던 김평호 감독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
전통 예술의 현대적 재해석과 융합은 한국 전통 문화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이번 대전시립무용단의 공연은 글로벌과 로컬의 융합을 통해 전통 무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된다. 앞으로도 전통 예술의 독립적 예술 분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전통 예술이 중심이 되는 작품들이 늘어났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