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가보니
요금 걱정에 냉방기 있어도 못꺼내
아끼고 아껴 전기요금 2500원 지불
에너지빈곤층 77% 경제활동 못해
[충청투데이 한유영 기자] “수급자가 아니라 지원도 못 받고, 안 쓰고 아껴야 하니까 선풍기도 아직 안 꺼냈어. 올해는 또 어떻게 버텨야하나 걱정이지.”
한낮 최고 온도 31도를 기록한 16일 오후 대전 동구 정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이미자(가명) 할머니의 2평 남짓한 방안은 후덥지근한 공기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방 한 구석에 겨우 자리를 차지한 소형 에어컨은 보자기에 둘둘 싸여 있어 장식품에 불과했다.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방 안에선 꿉꿉한 열기가 느껴졌지만 이날 선풍기는 돌아가지 않았다. 방 한 구석 작은 테이블 위 놓인 500ml 물 두 병, 좁은 골목 사이를 비집고 이따금 들어오는 바람만이 할머니의 더위를 식혀주고 있었다.
이 할머니는 지난해 전기·가스요금이 크게 오르면서부터 열대야가 있는 한여름에야 잠깐씩 더위를 식히기 위해 선풍기를 틀고 있다. 5만 2000원을 주고 산 가정용 LPG 가스 한 통은 아끼고 아껴 3~4달까지 사용했다.
이 할머니는 “쪽방촌에 산다고 여러 가지 지원 받을 것 같지만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면 전기·가스요금 지원은 꿈도 못 꾼다”며 “우리 같은 사람은 요금이 오르면 그만큼 더 아껴서 살아야지 방법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올 겨울에 전기장판을 좀 틀었더니 전기세가 많이 나온 경험이 있어서 3월에는 어찌나 아끼고 살았는지 전기요금으로 2500원이 나왔다”고 말했다.
다른 쪽방촌 주민 박용수(가명) 할아버지 역시 매년 힘겨운 여름나기를 하고 있지만 이 할머니 보다는 사정이 좀 낫다.
기초생활수급자면서 에너지바우처 사업 대상자 요건을 충족해 관련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다. 하지만 여름철 약 5만원까지 나오는 전기요금 부담에 에어컨 가동은 언감생심이다. 고장 나 털털 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선풍기 한 대가 여름을 버텨내는 유일한 수단이다.
박 할아버지는 “월 평균 전기요금이 그동안 6000~7000원 정도 나왔다면 이제는 1~2만원이 기본이 됐다”며 “요즘은 물가도 비싸서 밥 먹는 것도 힘든데 앞으로 전기·가스요금이 또 오른다고 하니 다가오는 여름·겨울이 무섭다”고 토로했다.
지난 4월말 기준 대전지역 쪽방 주민은 396명이다. 이 중 대부분인 338명은 기초생활수급자지만 나머지 58명은 비수급자다.
정부에서 취약계층을 위해 운영하는 에너지바우처 사업 대상자의 기본 요건은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른 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 수급자다. 또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에너지 취약계층에 한해 2분기 전기·가스요금 인상분 적용을 1년 유예하기로 했지만 비수급자들은 여기서도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에너지시민연대가 발표한 ‘에너지빈곤층 실태조사(2020년)’에 따르면 에너지빈곤층 대상자는 대부분 노인가구(85%)였다. 이 중 77%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다.
대전 쪽방 주민 대부분이 노인이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에너지빈곤층으로서 고른 지원이 필요하나 정부와 지자체의 손길은 닿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2분기 전기·가스요금이 인상되면서 고물가에 시름하고 관련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 채 한여름을 맞이하는 에너지 취약계층의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대전 동구청 관계자는 “비수급자인 쪽방 주민들의 경우 개인적인 문제로 수급자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어 지원이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대전쪽방상담소를 통해서 최대한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유영 기자 yyh@cctoday.co.kr

https://m.mk.co.kr/news/politics/view/2022/03/269908/
잘못 뽑았다.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