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통 이해되지 않는 장소다. 유동인구 많은 도시 대로변에 있어야 할 시설이다. 최근 고소한 빵과 쌉싸름한 커피를 즐기고자 자주 찻집을 찾는다. 식사하고 맥주집으로 향하던 발길이 자연스럽게 찻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오늘 찾는 찻집은 그 위치가 예사롭지 않다. 더구나 지금은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시각이다.장소를 듣고는 뜨악하다. 함께 한 지인들 표정도 나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가 이끄는 곳으로 향한다. 작은 하루살이도 기겁한다는 동행자나 평소 겁이 없는 나도 그곳을 지나는 불편함은 별반 다르지 않다. 가고자 하는 커피숍은
어린 시절 고무신은 그 무엇보다 더없이 소중한 신발로 지금의 값비싼 구두와 운동화 이상으로 소중히 다루었다. 고무신하면 검정고무신과 하얀고무신이 일반적으로 검정고무신은 어린아이와 청소년들이 주로 신었고 하얀고무신은 나이가 드신 어르신들이 많이 신었던 것으로 기억된다.읍내 오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할아버지를 따라 야산을 넘어 구불구불 먼지 나는 비포장도로를 한참을 걸어서 시장엘 간다. 물론 헌 고무신을 신고 그 먼 길을 할아버지 따라 장에 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읍내 장구경도 하고 먹을 것도 얻어먹고 갖고 싶은 것도 할아버지를
요란한 새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비 내린 새뜻한 초목들 사이로 소리 나는 쪽을 살펴본다. 벚나무 가지를 타고 작은 새 두 마리가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나의 단잠을 깨운 범인들이다. 그 소리뿐이 아니다.여느 날보다 오늘은 매미 소리가 귀가 따가울 정도다. 며칠을 살고자, 아니 한 번의 짝짓기를 하고자 긴 시간 침묵한 한을 풀어내기라도 하듯 목청껏 울어댄다. 곤충의 소리는 종족 보존을 향한 구애의 소리라고 말한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으리라는 간절함의 소리란다. 하지만, 온몸으로 된더위를 이기는 할머니에게 곤충의 간절
뜨거운 다리미가 지나간 자리마다 판판한 길이 난다. 쭈글쭈글하던 옷자락이 반듯하게 펴지며 그 길을 따라 마음이 정연해진다. 삼복더위에 뜨거운 열판을 앞에 놓고 일거리를 만든 것이 조금은 미련한 처사지만 옷가지들이 정갈해지는 만큼 흐물대던 심신이 반듯해지는 기분이 들어 위안이 된다.감염률이 최고조로 높아지던 추세 때도 용케 피해 왔는데 삼복더위 철에 결국 코로나 고갯마루를 넘지 못했다. 며칠간의 격리 통보와 동시에 기온보다 훨씬 높은 고열이 온몸을 끓게 하고 동반된 근육통은 옴짝달싹 못 하게 사지를 눌렀다. 한 움큼씩의 약을 몸 안으
언제부턴가 식당엘 가면 정수기에는 ‘물은 셀프입니다’, 커피 머신에는 ‘커피는 셀프입니다’, ‘추가 반찬은 셀프입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세차장, 주유소, 빨래방, 마트 등 이제는 어느 한곳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셀프라는 단어는 우리 일상 속에 슬그머니 들어와 많은 부분에 녹아있다. 이는 세태의 변화요. 우리네 일상을 말해주는 현실이기도 하다.요즈음 일부식당에는 식탁위에 탭이 설치되어 있어서 종업원과의 대화 없이도 음식 주문에서부터 결제까지 앉아서 한 번에 할 수 있다. 한창 성업 중인 커피숍도 모니터 메뉴 터치로 주문에서부터
나는 잠을 좋아한다. 하루고 이틀이고 삼일이고, 죽은 듯 잠 속에 빠지곤 한다. 그리 잠을 자고 나면, 파김치처럼 늘어진 몸도 바늘처럼 날카로운 신경도 제자리를 찾는다. 하지만, 그토록 깊은 잠을 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깊은 잠이 고프다. 마치 마음에 허기가 든 것처럼 잠이 그립다. 쉼 없이 달려온 삶에 속도를 줄이라는 신호이리라. 그러나 쉽지 않다. 첫아이 출산하고 작디작은 아기의 숨소리를 들으며 잠들던 기억이 그립다. 모든 엄마는 그 달콤한 잠을 기억하리라. 문득 출산에 관한 세종실록의 기록을 되짚어본다.세종대왕 하면 한글,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지난해 이맘때도 이렇게 더웠을까, 이런 날 집안에 앉아있어야 한다는 건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밖에 안 되기에 무작정 문을 박차고 나왔다. 후덥지근하고 기분이 가라앉는 날에는 여행하는 것이 상책이기에 교외를 향해 핸들을 돌렸다.여행이란 것이 꼭 먼 길을 떠나야 함은 아니다. 미리 계획하고 누구와 동반하여 떠나는 것만이 설렘을 안겨주는 것은 정녕 아니다. 일상의 모든 고리를 과감하게 풀고 틀에 박힌 하루에서 벗어나 오롯한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면 여행이라 이름해도 손색없지 않던가. 도심을 벗어나 교외를 향해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해지는 곳 고향. 그래서 어머니 품속 같다는 얘기도 많이들 한다. 고향은 태어나서 자란 곳,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 든 곳이라 한다. 또한 고향을 연상하면 주로 정겨운 시골을 떠올리기도 한다.새해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반년이 후딱 지나 벌써 7월이다. 그간 제20대 대통령선거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었다. 선거 때마다 얘기되는 것이 후보자의 지역연고가 어디냐가 화두로 떠오른다. 충청의 아들·사위, 영남의 아들·사위 등 선거 때만 되면 고향 연고도 많
민선 8기 단체장의 임기가 시작되었다. 이들이 앞으로 지자체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기대가 크다.당선 후 인수위를 운영하면서 조직의 인적, 물적 자원과 주요 업무 그리고 문제 사업을 파악하느라 분주하였으리라. 또한,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조직을 구성하고 인력과 예산을 배분하느라 고민하였으리라. 그런데 어느 조직이든 성공하려면 먼저 명확한 비전 제시가 있어야 한다. 성공하는 단체장이 되는 첫걸음 또한 같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수 없는 리더의 기본 임무이다.리더는 시민과 조직원에게 그가 꿈꾸는 도시의 미래 모습을 생
“한 가지만 빌어야 해요. 그것이 염원이에요”생각지도 못했던 말이다. 선뜻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아이의 행동을 지켜본다. 돌탑 모양을 자세히 살펴보니 아래로는 넓적한 돌을 놓고, 위로는 작은 돌을 얹어야 한다는 이치도 깨우친 듯하다. 아이의 말과 행동에서 신중함이 느껴진다.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더불어 염원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 순간에도 절과 교회 그리고 성당에서 기도는 멈추지 않는다. 절집 주변에서는 불자들 아니 불자가 아니더라도 오고 가는 사람들이 쌓아 올린 수많은 돌탑과 마주한다. 돌탑을 쌓는 이들은 자신이 염원하는 것을
부모산 자락에 걸친 새벽달이 처연하다. 여명이 들 창가로 시나브로 다가와 방안을 밝히는데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그리 높지도 않은 산등성이를 쉬이 넘어가지 못한 채 걸려있다. 밤새 옅은 빛으로도 어둠을 몰아내던 열정이 기운을 다했음인가. 어둠 속에서 세상을 향해 고고하게 내리던 달빛과는 사뭇 다르게 희부옇고 창백한 모습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듯하다.십여 년간을 가족으로 함께 살던 애완견 모카의 건강이 심상찮다. 두어 번의 수술로도 완치할 수 없다는 시한부를 선고받은 불치병이 점점 모카의 힘아리를 빼앗고 있다. 그 맑고 초롱초롱하던
내가 태어나서 맨 처음으로 배운 이름 어머니, 아버지. 부모님이다. 두 분은 80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아직도 시골에서 농사일에 현역이시다.여느 부모님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 유별나지 않겠습니다마는 내 어머니는 어려서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자라서 그런지 자식에 대한 사랑은 물론 동기간에 대한 애착이 무척이나 강하신 분이다.모든 80세 이상의 우리네 부모님들의 삶은 정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태어날 때는 일제 강점기요. 해방과 더불어 6·25 전쟁을 겪으며 초등학교 시절 등 유소년 기를 보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폐허가 된 우리사회
높은 빌딩에서 밀물이 밀려온다. 이내 파도가 벽에 부딪혀 하얀 거품을 물고 산산이 부서진다. 순간 나도 모르게 바닷물에 젖을까 몸을 움츠린다. 이내 그것이 착시현상이라는 걸 감지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멋쩍게 웃는다. 코엑스 광장 ‘파도’라는 광고영상이다. 공공장소나 옥외 광고용으로 ‘제4의 스크린’이라 일컬어지는 사이니지이다. 영상이 실물과 너무도 흡사하여 착시현상인 줄 알면서도 파도가 쏟아지는 장면에서 매번 움찔거린다. 그 웅장함이 참으로 엄청나다. 그뿐이 아니다. 허공으로 차량이 질주하는가 하면, 호랑이가 포효하며 달려드는 듯한
아침에 눈을 뜨면 습관처럼 제일 먼저 성호를 긋는다. 오늘 하루도 성모님의 자녀로서 세상의 헛된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평화를 은총으로 내리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해돋이에서 해넘이까지 별 탈이 없이 순조로운 하루를 영위한다는 것이 어떤 은총보다 크기에 제일 먼저 평범하고 평화로운 시간이 되길 기도한다.햇살이 창가를 비추기도 전인 신 새벽이면 식탁 한쪽에 조용히 앉아 커피를 내린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커피가 유리 주전자에 차오를수록 온 집안도 그윽한 커피 향으로 채워지고 먼저 페부까지 깊숙이 향을 들이마신 후 맛을 음
정(情)이라는 글자는 정서적으로 우리 문화를 지탱해 온 가장 근본이 되는 글자가 아닌가 싶다.情자는 사전적 의미로 ‘뜻’이나 ‘사랑’, ‘인정’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心(마음 심)자와 靑(푸를 청)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靑자는 우물 주위로 푸른 초목이 자라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맑다’나 ‘푸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사랑’이나 ‘인정’은 사람의 가장 순수한 마음일 것이다.중학교 졸업 무렵 한문 선생님이 마지막 수업을 하시면서 情자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난다. 부수인 심방변(?)을 가지고 너희들과 나는 졸업하면
"다시 지금은"이란 한 문장에 붙들려 책장을 넘기지도 덮지도 못하고 있다. 글은 짤막한 다섯 문장뿐이다. 작가의 가슴 밑바닥에서 끌려 나왔을 문장은 짧지만 강렬하다. "다시는 아무것도 빌지 않게 해달라고/ 스스로에게 빌어야 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라는 문장이 생각을 멈추게 한다.지난 기억 속 한 꼭지에 머문다. 인간의 몸체가 한없이 보잘것없는 물체라는 걸 경험한 날이다. 한순간 마디가 잘린 나의 손가락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참으로 고왔다. 날씬한 몸매에 키는 나보다 두상 하나는 더 컸다. 입원 내내 그의 눈물을 본 기억
온천지가 꽃이다. 어스름 달빛 아래로 살구꽃이 피어나고 눈 부신 햇살 사이로도 제비꽃은 피고 있다. 겨우내 꽁꽁 닫고 있던 대지의 빗장을 활짝 열어젖히고 여린 생명은 큰 힘으로 불쑥 솟아났다. 나지막한 산마루에서도, 높다란 구릉에서도 새 생명이 초록의 촉을 세우고 꽃으로 환하게 피어나니 신비한 생성의 물결이 온 세상에 출렁인다. 꽃이 피어난 곳마다 각양의 향기를 분분히 날리며 봄의 완연함을 알린다.만화방창 절기 속에 심신을 진탕 빠져보려 떠들썩한 상춘객들의 무리 속으로 나를 던졌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무더기를 이루며 앞다투어
해마다 4월 달력 어느 날에 파란 펜으로 몇 년이라는 표시를 해 둔적이 있었다. 공직생활 몇 년이라는 표시다. 고장도 없는 저 세월은 후딱 지나가 공직생활 40여년을 마감한지도 벌써 2년째다.고등학교 시절 대학예비고사(지금의 수능시험)를 보고나니 담임 선생님께서 공무원시험에 응시해 보는 게 어떠냐고 하시면서 응시원서를 주셨다.초등학교를 등잔불 밑에서 공부하다 전기불도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들어 온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을 온 나로서는 학교생활기록부 상의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에 늘 교사, 공무원, 은행원 등이 고작이었다. 그 인연
[충청투데이 심형식 기자] 주인이 떠난 집은 사람의 온기도 사라진다. 그 집에 더는 머물 자손이 없다. 작은 산촌의 역사를 기억하는 마을 주민들이 가무내에 얼마나 더 머물 수 있으랴. 마을에는 일손을 보탤 남자도 없다. 큰아버지가 마을의 유일한 남자였지만, 이제 당신도 더는 머물 수 없단다. 병이 깊어 요양원으로 모신다는 사촌의 말이 아득하게 들린다.내가 자라온 시간이 사라지고 있다. 가무내는 코흘리개 아이의 성장과 태양 아래 까맣게 그을린 부모님의 삶도 잊히리라. 동그란 문고리에 지문처럼 남아있던 허리 굽은 할머니의 흔적도 사라진
내 고향 마을 어귀에 녹시래(鹿柴來)라는 고개가 있다. 응봉산 정상을 조금 빗겨 난 산등성이에 구불구불 황톳길인 녹시래는 마을 사람들의 출타할 때 나들목이며 관문이었다. 눈보라가 혹독하게 몰아칠 때도, 땡볕 무더위 속에서도 천둥벌거숭이 서너 명이 모여 녹시래를 넘을 때면 숨을 할딱이면서 왜 그리 뛰어올랐는지. 진달래 꽃물로 둘레 산이 붉게 물드는 봄이면 꽃 무덤 속에서 문둥이가 나타난다는 속설로 고개를 넘을 때마다 오금을 저리게도 했던 곳이다.철철이 변모하는 계절의 향연도 눈 호강이 됐고 특별한 놀잇거리가 없던 터라 그곳은 동년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