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수필가

높은 빌딩에서 밀물이 밀려온다. 이내 파도가 벽에 부딪혀 하얀 거품을 물고 산산이 부서진다. 순간 나도 모르게 바닷물에 젖을까 몸을 움츠린다. 이내 그것이 착시현상이라는 걸 감지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멋쩍게 웃는다. 코엑스 광장 ‘파도’라는 광고영상이다. 공공장소나 옥외 광고용으로 ‘제4의 스크린’이라 일컬어지는 사이니지이다. 영상이 실물과 너무도 흡사하여 착시현상인 줄 알면서도 파도가 쏟아지는 장면에서 매번 움찔거린다. 그 웅장함이 참으로 엄청나다. 그뿐이 아니다. 허공으로 차량이 질주하는가 하면, 호랑이가 포효하며 달려드는 듯한 착각에 오싹한 경험을 한 이가 나만은 아니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동해의 출렁이는 푸른 바다가 아니, 백두산 호랑이가 도시의 빌딩 숲에 나타나 건물 벽을 타고 노니는 모습을 볼 줄이야. 파도 영상 ‘웨이브(WAVE)’는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최고상인 금상을 받은 작품이다. 필자는 현지에서 독창적인 영상미와 입체감, 창의성 등 모든 면에서 찬사를 받았다며 들뜬 분위기를 전한다. ‘웨이브(WAVE)’의 출렁이는 영상을 보노라니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덩치 큰 남자가 귀여운 손 하트를 보낸다. 목걸이가 조명을 받아 번쩍이고, 이마에는 스키용 고글을 걸쳤다. 방청석에 앉은 중년의 한 남자가 열광적인 무대를 바라보는 표정이 미묘하다. 그는 공연이 끝나고서야 무대를 향해 큰 손을 흔들며 눈가를 훔친다.

현대과학은 죽은 자를 무대로 소환한 것이다. 이마에 스키용 고글을 걸치고 웃고 있는 사람은 오래전 세상을 떠난 뮤지션이다. 사십 중반을 넘은 사람이라면, 그를 모르지 않으리라. 그가 거북이라는 혼성그룹의 리더로 활발히 활동하다가 요절한 것을. 무대에 오른 동료도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도 반가움과 안타까움의 감정이 뒤섞여 미묘한 분위기에 주억거린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 조명이 꺼진다. 그를 그리워한 팬도 가족도 이제 그를 보낼 시간이 되었음을 알고 작별 인사를 한다. 그가 손 하트를 보내며 연기처럼 사라진다.

과학의 발전은 AI 인공지능 시대를 열었다. 가상의 세계에 미녀를 소환하고 딸을 잃고 낙심하던 엄마에게 딸의 모습이 부활한다. 우리의 눈과 귀를 과거와 미래로 순식간에 옮겨 놓는다. 과학은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이제 출근하지 않고 영상으로 업무를 대신하는 재택근무도 낯설지 않다. 코로나19로 우리의 삶은 빠르게 메타버스에 올라탔는지도 모른다. 어쩌랴 우리는 이미 너나없이 메타버스의 삶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시대에 다다른 것이다.

세상은 늘 변화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외면할 수 없다. 세상이 변한다면, 나도 변해야 한다. 딸들과 대화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새로운 문물을 내 것인 양 소화해야 하지 않으랴. 나도 기이한 세상이 아닌 신식의 나라로 들고자 메타버스를 올라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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