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아침에 눈을 뜨면 습관처럼 제일 먼저 성호를 긋는다. 오늘 하루도 성모님의 자녀로서 세상의 헛된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평화를 은총으로 내리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해돋이에서 해넘이까지 별 탈이 없이 순조로운 하루를 영위한다는 것이 어떤 은총보다 크기에 제일 먼저 평범하고 평화로운 시간이 되길 기도한다.

햇살이 창가를 비추기도 전인 신 새벽이면 식탁 한쪽에 조용히 앉아 커피를 내린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커피가 유리 주전자에 차오를수록 온 집안도 그윽한 커피 향으로 채워지고 먼저 페부까지 깊숙이 향을 들이마신 후 맛을 음미하며 오감을 깨운다.

똑같은 일상의 아침을 반복하면서도 늘 그 시간을 사랑하는 이유가 커피 향을 오롯한 민낯으로 온전히 취할 수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오월의 산야는 마냥 푸르르고 꽃바람은 향기를 몰고 와 여심을 흔들어대니 모처럼의 한유를 집에서 뒹굴게 허락지 않아 무작정 길을 나섰다. 동네 모퉁이를 돌아서니 어느새 담장 위로 붉디붉은 덩굴장미가 꽃망울을 터트리며 길손의 발걸음을 잡는다. 한 송이를 손으로 감싸 안고 숨을 크게 들이 마셔보았다,

황홀하고 고혹적인 장미의 진한 내음을 기대했지만 어떤 일인지 도통 향기가 코로 들어오질 않는다. 그제야 입과 코를 단단하게 막고 있는 마스크가 의식됐다.

이제는 분신처럼 신체 일부가 되어 집을 나설 때면 으레 착용하는 것이 습관이 돼버린 마스크 덕에 건강은 지켰지만, 자연이 주던 이런 소소한 선물들을 참 많이도 포기하고 잃었나 보다. 방역의 기능을 더 높인 철벽같은 촘촘한 마스크는 이렇게 오월의 산야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도, 봄날 지천으로 풍기던 꽃향기도 어느 날부터인지 앗아갔으니.

이맘때면 앞산에서 풍겨오던 갖가지 꽃향기도 좋았지만, 산들바람에 묻어오는 풋풋한 풀 내음은 또 얼마나 싱그러웠던지. 후각으로 전해지는 갖가지 꽃향기와 풀 냄새는 유년의 추억을 상기시켰고 아련한 그리움에 젖게도 했다. 불과 얼마 전 그 지극히도 순수하고 평범했던 봄날이 아주 먼 옛날인 듯 아득하기만 하다. 급변하는 시간의 궤적 안에서도 평범하게 하루를 맞이하고 보내는 보통의 날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은총인지 가히 깨닫지 못하고 감사함을 모르며 여태 살아왔으니 그런 오만이 민망하다.

오월을 맞으며 드디어 밖에서는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는 기별이 왔다. 하지만 거리의 사람들을 보면 전염의 두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했는지 거지반이 아직 마스크로 철벽수비를 하고 있다. 의무에서 벗어나 자율로 완화된 시책만으로도 속박에서 벗어난 양 반갑기는 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나부터도 외출할 때 마스크 착용이 되레 편한 걸 어찌할까.

오롯한 민낯으로 사람을 만나고 언제 어느 곳에서나 덥석 손잡을 수 있는 평범한 날들이 어서 오길 오월의 맑고 푸른 하늘을 보며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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