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부모산 자락에 걸친 새벽달이 처연하다. 여명이 들 창가로 시나브로 다가와 방안을 밝히는데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그리 높지도 않은 산등성이를 쉬이 넘어가지 못한 채 걸려있다. 밤새 옅은 빛으로도 어둠을 몰아내던 열정이 기운을 다했음인가. 어둠 속에서 세상을 향해 고고하게 내리던 달빛과는 사뭇 다르게 희부옇고 창백한 모습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듯하다.

십여 년간을 가족으로 함께 살던 애완견 모카의 건강이 심상찮다. 두어 번의 수술로도 완치할 수 없다는 시한부를 선고받은 불치병이 점점 모카의 힘아리를 빼앗고 있다. 그 맑고 초롱초롱하던 두 눈은 새벽달처럼 눈동자가 뿌옇고 초능력적인 청각도 흐려진 지 오래다. 온종일 잠을 자는 것인지 웅크리고 있는 가련한 모카를 보면 맘이 아려와 고개를 돌린다. 점점 소진돼가는 기력에도 손을 놓고 있는 내가 인간과 동물의 생명 가치를 저울질하는 것은 아닌지 그냥 죄스럽고 미안하다.

나는 정녕 극성 애완동물 애호가는 아니다. 외간의 눈에 띌 정도의 진한 사랑으로 유별나게 품어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동물이라는 편견으로 한 울타리 안에서 소외시키지도 않았다. 십수 년 동안 모카는 내 울안에서 당연한 가족의 일원이었다. 모카 또한 수선스럽지 못한 나의 성향을 닮은 건지 애견으로써 유별난 특기나 애교도 없는 보통의 자그마한 순둥이다. 집안을 더럽히거나 음식을 탐하는 저지레를 한 번도 한 적 없어 혼내본 적도 없는듯하다. 외출했다 돌아오는 식구들 무릎을 차지하고 한동안 떨어지지 않으려 하던 행동만이 모카가 부리던 유일한 욕심이고 애교였다.

시한부를 선고받은 지난겨울부터 애달픈 마음에 봄꽃이 피고 질 때까지만이라도 함께해주길 고대했다. 가족들의 간절함을 알았는지 오월 장미꽃 길도 함께 산책했고 유월 산야의 푸르름도 함께해줘 무한이 고맙고 기특하다. 눈이 부셔 가까이할 수없던 햇살과는 달리 은은한 빛을 그윽히 바라볼 수 있는 달을 난 더 좋아했다. 둥근달을 보고 있노라면 은근하지만 그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시간도 함께 해줄 것만 같았다. 달빛서 위로와 용기를 얻을 때면 세상 풍파가 몰아쳐도 겁나지 않았다. 십수 년간 우리 가족사에 늘 함께했던 모카와의 동거는 달빛같이 은은했다. 모카와 나눈 교감에서 내가 더 많이 위로받았는데 함께해야 할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면서도 무엇을 되돌려줘야 할지 가슴만 먹먹해지고 막막하다. 여명이 짙어질수록 밤새 지나온 시간의 궤적들만 남긴 채 새벽달도 기어이 기울어져 간다. 이별이 두렵고 애달프지만 이젠 나도 미련의 끈을 놓고 과감하게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할 것 같다. 다만 모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그 길이 험하지 않고 힘겹지 않길 바랄 뿐이다. 무엇보다 내가 먼저 보내지 않고 모카가 나를 먼저 떠나가주길 간절히 또 간절히 기도한다면 헤어질 결심을 굳힌 내가 그것 또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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