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뜨거운 다리미가 지나간 자리마다 판판한 길이 난다. 쭈글쭈글하던 옷자락이 반듯하게 펴지며 그 길을 따라 마음이 정연해진다. 삼복더위에 뜨거운 열판을 앞에 놓고 일거리를 만든 것이 조금은 미련한 처사지만 옷가지들이 정갈해지는 만큼 흐물대던 심신이 반듯해지는 기분이 들어 위안이 된다.

감염률이 최고조로 높아지던 추세 때도 용케 피해 왔는데 삼복더위 철에 결국 코로나 고갯마루를 넘지 못했다. 며칠간의 격리 통보와 동시에 기온보다 훨씬 높은 고열이 온몸을 끓게 하고 동반된 근육통은 옴짝달싹 못 하게 사지를 눌렀다. 한 움큼씩의 약을 몸 안으로 털어놓으며 이박삼일 간의 열병을 치르고 나서야 허물어졌던 심신을 추스를 수가 있었다.

앓는 동안 누구의 출입도 허용할 수없던 집안은 엉망이다. 안주인인 내가 며칠 손을 놓았다고 그 세 널브러진 살림이 사방에 산적해 있다. 건조기에서 빼놓은 옷가지들의 구김을 펴서 옷장에 걸어놓고 냉장고부터 시작하여 주방에 손을 대니 한두 가지 일거리가 아니다. 앓아누워있던 삼일간의 흔적들이 이처럼 한꺼번에 몰아닥친 건 결코 아닐진대 그동안 이런 것들이 눈에 거슬려 어찌 지내왔을까. 발 달린 짐승이 어딘들 못 갈까마는 방랑벽을 잠재우지 못하고 매일같이 문지방을 넘어 애마와 함께 싸돌아다녔으니 집안의 구석구석을 볼 겨를이 어디 있었겠나.

태만했던 일상의 흔적들이 적나라하게 눈앞으로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이 나이 되도록 인위적으로 나의 출타를 제지당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집안에 쌓인 일거리를 당장 해내야 하는 과제로 삼아본 적도 그리 많지 않다. 피하지 못 할 일들이라면 차라리 즐기라는 말처럼 긍정의 힘으로 역량에 자가 충전하며 집안 대청소에 돌입한 것이다. 옷장의 옷가지들과 냉장고의 반찬통을 열 맞추어 정리하고 정원의 화분들까지 반듯하게 자리해놓으니 그간 두텁게 내려앉았던 나태의 때도 벗겨진 느낌이다.

반짝이는 살림살이와 제자리를 찾아 정돈된 가재도구들을 보니 며칠간의 구속이 결코 답답하기만 한 것은 아니란 생각이 번뜩 든다. 며칠이라는 한계가 정해진 인위적 격리는 이유 있는 구속이기에 타성에 빠져 살던 내게 이번 병고는 본연을 찾아 초심으로 돌아오는 전환지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혼자 보낸 그 시간이 자유분방한 행적에 선을 긋고 이젠 이쯤에서 닻을 내리라는 일말의 일침인지도 모를 일이다.

복작대며 시끌벅적했던 인간사를 벗어나게 한 며칠 간의 이유 있는 구속이 차라리 숭고하다고 말한다면 여태껏 자유를 누리던 분방한 삶의 건방진 자만일까. 고요한 집안에서 홀로 지내야 하는 날들이 이제 사나흘 정도 남았다. 오롯하게 그 시간이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는 시간이 된다면 이 또한 혼자라는 것도, 이유 있는 구속도 감사하리. 열병을 치른 후 조용한 집에서 호젓하게 마시는 커피 향이 오늘따라 그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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