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지난해 이맘때도 이렇게 더웠을까, 이런 날 집안에 앉아있어야 한다는 건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밖에 안 되기에 무작정 문을 박차고 나왔다. 후덥지근하고 기분이 가라앉는 날에는 여행하는 것이 상책이기에 교외를 향해 핸들을 돌렸다.

여행이란 것이 꼭 먼 길을 떠나야 함은 아니다. 미리 계획하고 누구와 동반하여 떠나는 것만이 설렘을 안겨주는 것은 정녕 아니다. 일상의 모든 고리를 과감하게 풀고 틀에 박힌 하루에서 벗어나 오롯한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면 여행이라 이름해도 손색없지 않던가. 도심을 벗어나 교외를 향해 달리는 차 창 밖 한여름 풍경은 그저 싱그럽기만 하다. 산야는 초록의 향연을 이루고 태양을 향해 더 뜨거운 열정을 다해달라 응원하는듯하다.

뜨겁게 내리는 태양 빛을 견디면서 영글어가는 곡식들을 보며 자연 앞에 서니 인간의 나약함이 보인다. 후끈 달아오른 체온도 감당하지 못하는 참을성 없는 성품의 내가 저 산야의 어디쯤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자연의 순리 앞에서 쉽게 순응하지 못하는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인간인지. 잠깐이 변화를 감내하지 못하고 후다닥거리며 허물어지는 의지를 어찌 만물의 영장이라 이름하였을까.

짙푸른 초록의 산허리를 뚫어 길을 낸 아득하게 긴 터널에 들어섰다. 차창을 통해 들어오던 느슨한 풍광과는 달리 차선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긴장감으로 핸들을 잡은 손이 축축해진다. 사회의 일원에서 어긋나지 않으려 아등바등 살아온 것이 내 딴에는 열정이었지만 긴장의 연속이었으며 시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똑같은 하루를 보내면서 늘 꿈꾸던 것이 오늘보다는 좀 더 평화롭고 한유한 내일이었던 것 같다.

계절이 변하듯 삶 또한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을 무얼 그리 동동거리며 살아왔을까. 고달팠던 오늘일지라도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내일은 또 밝은 태양이 떠오른다는 걸 알기에 그 기대감으로 여태껏 살지 않았던가. 늘 현재는 고달프고 외롭지만 지나고 보면 그 또한 내 삶의 자양분이 되었기에 감사하면서.

터널을 들어서며 진땀으로 움켜잡았던 손아귀에 이젠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달려갈 새로운 힘이 다시 솟는다. 컴컴하고 구불거리고 미로 같던 터널을 지나가면 또 어떤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날 맞아줄까. 산다는 건 늘 내일을 향해 달려가는 호기심의 연속이었나보다.

그래. 그래서 여행은 늘 무언가를 기대하며 집을 나서는 거지. 아무것도 얻은 것 없는듯해도 돌아보면 뒤안길마다 한 보따리씩 추억을 만들고 흔들렸던 여린 마음을 다잡아 돌아오곤 했었지. 그래서 여행은 꼭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거랬어.

붉게 물든 석양을 보며 내일은 또 어떤 사연으로 새로운 하루를 그려놓을지 벌써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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