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내 고향 마을 어귀에 녹시래(鹿柴來)라는 고개가 있다. 응봉산 정상을 조금 빗겨 난 산등성이에 구불구불 황톳길인 녹시래는 마을 사람들의 출타할 때 나들목이며 관문이었다. 눈보라가 혹독하게 몰아칠 때도, 땡볕 무더위 속에서도 천둥벌거숭이 서너 명이 모여 녹시래를 넘을 때면 숨을 할딱이면서 왜 그리 뛰어올랐는지. 진달래 꽃물로 둘레 산이 붉게 물드는 봄이면 꽃 무덤 속에서 문둥이가 나타난다는 속설로 고개를 넘을 때마다 오금을 저리게도 했던 곳이다.

철철이 변모하는 계절의 향연도 눈 호강이 됐고 특별한 놀잇거리가 없던 터라 그곳은 동년배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장날이면 우마차에 짐을 잔뜩 싣고 힘겹게 오르는 누렁이의 뒤를 따라가면서 소 발자국에 맞추어 폴짝폴짝 뛰던 기억이 아슴아슴하다. 찔레꽃, 아카시아가 흐드러질 때면 천둥벌거숭이들의 하굣길에 허기를 채워주던 유년의 향수가 진득하게 묻어있는 녹시래다.

언제부터 녹시래라 불리었는지 모르지만, 녹시라는 뜻은 나뭇가지나 토막들을 사슴뿔 모양으로 얼기설기 엮어 쌓아놓은 것이라 한다. 마을 대부분이 같은 혈연들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으니 그 고개는 적의 범접을 막고 마을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성곽 같은 요새로 녹시래라 이름하였나보다.

등하굣길엔 반드시 넘나들어야 하는 그 고갯길이 지금 생각해봐도 어린 깜냥으론 꽤 가파르고 험준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시절엔 녹시래를 넘나들며 고달프다 투정도 하지 않았고 쉬운 샛길을 찾는 요령을 피울 줄도 몰랐다.

여태껏 삶의 긴 여정을 지나오며 나는 가파르던 고갯길을 몇 굽이나 넘어왔을까.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지나온 인생길이 사시사철 꽃피고 종달새만 노래하며 우짖었을까. 살을 에는 한겨울 눈보라같이 혹독하게 추운 날도 있고 훅 불어오는 세파의 바람결에 쥐었던 것들을 흙먼지처럼 허망하게 날려 보냈던 적들도 있지 않던가. 무모한 도전은 곧 허욕이었음을 알기까지 신기루 같은 허상을 좇다가 헐떡이고 그루터기에 주저앉아 회한의 눈물도 훔쳐내던 날들이 몇몇 날이었는지.

현재는 항상 외롭고 고달파서 자조했던 적도 참 많았다. 어깨 위 삶의 보따리들이 사지(四肢)를 짓누를 때면 모든 것을 다 놓아 버리고 싶을 만큼 힘겨울 때도 있었다. 푸닥진 다리로 신작로 먼짓길을 걷고 또 녹시래를 뛰어넘어 십여 리를 오가던 어린 시절을 유추하니 이제는 지난 추억들이 아련한 그리움이 되어 내게 다시 온다. 돌아보면 울고 웃던 세상사 모든 것들은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고 그 또한 그리운 것인데 무얼 그리 호들갑을 떨며 애달파했는지.

수십 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녹시래는 지금, 고개라 칭하기도 무색할 만큼 뭉긋하니 낮아졌다. 굽이치며 가파른 인생의 고갯길을 내가 또 만날지라도 넓은 아량으로 포용하며 서두르지 않고 쉬엄쉬엄 넘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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