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수필가

나는 잠을 좋아한다. 하루고 이틀이고 삼일이고, 죽은 듯 잠 속에 빠지곤 한다. 그리 잠을 자고 나면, 파김치처럼 늘어진 몸도 바늘처럼 날카로운 신경도 제자리를 찾는다. 하지만, 그토록 깊은 잠을 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깊은 잠이 고프다. 마치 마음에 허기가 든 것처럼 잠이 그립다. 쉼 없이 달려온 삶에 속도를 줄이라는 신호이리라. 그러나 쉽지 않다. 첫아이 출산하고 작디작은 아기의 숨소리를 들으며 잠들던 기억이 그립다. 모든 엄마는 그 달콤한 잠을 기억하리라. 문득 출산에 관한 세종실록의 기록을 되짚어본다.

세종대왕 하면 한글, 훈민정음을 떠올리리라. 다른 문자보다 풍성한 뜻과 인간의 감성을 담은 문자가 한글이 아니랴. 우리나라를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로 만든 최고의 공신이다. 하지만, 훈민정음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아기를 낳은 산모에게는 백일, 그 배우자에게는 한 달이라는 출산휴가를 주었다’라는 놀라운 기록이 있다. 미래에는 나라의 인구수가 국가의 미래를 가늠한다고 한다. 선인은 혜안으로 오백 년을 앞서 후인의 삶을 본 것일까. 또한, ‘그것을 악용하는 자가 많을 것’이라며 반대하던 신하들을 한마디로 제압한다. 세종대왕은 ‘그래봐야 고작 한 달이다’라고 말한, 진정으로 쉼의 필요성을 이해한 지도자가 아니랴.

다만, 보고 듣던 이야기와 조금 거리가 있다. 우리는 아이를 낳고도 쉬지 못하고 논과 밭으로 향했던 부모님 세대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아니 어머니 세대까지 갈 필요가 무에 있으랴. 아이를 출산하고 누워있을 수가 없던 것은 우리 세대도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 시작하는 일마다 번성할 때였다. 사무실에서 동분서주할 이를 생각하니 누워 쉬는 것이 바늘방석이었다. 우리는 그리 살지 않았던가.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이 사뭇 낯설다. 얼굴에 패인 깊은 주름은 세월이 준 덤이다. 생업을 쫓던 시기엔 관심 없던 모습이 불현듯 신경이 쓰인다. 이 또한, 심신이 간절한 휴식을 원해서이리라. 하지만, 현실은 온전한 휴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쉼이 그립다. 도시의 소음도 신경을 자극한다. 작은 아기를 품에 안고 잠들던 그 평온함을 찾고 싶다. 산천에 들어 바람에 줏대 없이 뒹구는 낙엽을 줍고, 줍고 또 줍는 단순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몸이 늙으면 어떠하랴. 얼굴에 골 주름이 진들 무엇이 대수이랴. 전력 질주하는 삶이 잘사는 인생이며, 쉬엄쉬엄 사는 삶이 뒤처지는 삶이라 누가 말할 수 있으랴. 지금은 나의 삶을 돌아볼 쉼이 필요하다.

두 눈을 살포시 감는다. 가무내 산골, 나무 마루에 대자로 누워있는 상상을 한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앞산에 아버지가 나뭇짐을 출렁이며 내려오는 모습이 어른거린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오늘 밤은 꿈속이라도 좋으니 당신의 품속에서 아기처럼 깊은 쉼에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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