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상 청주시체육회 사무국장

어린 시절 고무신은 그 무엇보다 더없이 소중한 신발로 지금의 값비싼 구두와 운동화 이상으로 소중히 다루었다. 고무신하면 검정고무신과 하얀고무신이 일반적으로 검정고무신은 어린아이와 청소년들이 주로 신었고 하얀고무신은 나이가 드신 어르신들이 많이 신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읍내 오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할아버지를 따라 야산을 넘어 구불구불 먼지 나는 비포장도로를 한참을 걸어서 시장엘 간다. 물론 헌 고무신을 신고 그 먼 길을 할아버지 따라 장에 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읍내 장구경도 하고 먹을 것도 얻어먹고 갖고 싶은 것도 할아버지를 졸라서 가질 수가 있었다. 특히 헌 고무신을 새것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도 했다. 새신을 사주면 신발 밑바닥이 빨리 닳을까봐 한동안 헌신을 신고 다니기도 했다.

요즘 같은 무더위에는 친구들과 시냇가에 가서 멱도 감고 송사리, 피라미 등 작은 물고기를 잡는 것도 고무신이요. 잡은 물고기를 잠시 보관해 놓는 곳도 고무신이었다. 물론 집에 돌아갈 때에는 잡았던 물고기를 방생하는 너그러움은 필수다. 또 친구들과 고무신 멀리던지기 시합을 해서 찐 감자, 옥수수 등 간식 내기를 하던 기억도 생생하다. 시합을 하다보면 지나친 승부욕으로 힘껏 발차기를 해 고무신이 너무 높이 떠서 지붕위에 안착하는 경우도 있어 목말을 태워서 끄집어 내리기도 했다.

양말이 귀해 맨발로 신는 경우가 많아 땀이 나면 미끄러지기 일쑤고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신발 젖는 거 걱정안하고 걸을 수 있고 시골 비포장도로 진흙길에도 흙 묻는 거 걱정 없이 마음대로 걸을 수 있어서 편했고 또 시냇물이나 우물가에서 두세 번 물만 뿌려주고 세워서 말려주기만 하면 고무신 세탁 끝이다.

장마철 물이 불어난 시냇물을 건너다가 고무신이 벗겨져 한참을 쫒아가서 구조하는 경우도 있고 물살에 휩쓸려 고무신과 영영 이별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집에 돌아와 혼나는 건 다반사요. 한 짝이라도 남아있으면 나중에 고물이 된 고무신을 엿장수의 엿과 바꿔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전기가 없던 시절 이웃집에 놀러갔다 올 때면 캄캄하여 한쪽에 잘 벗어놓은 고무신들이 뒤엉켜 서로 대충 발에 맞으면 먼저 가는 사람이 신고 가는 바람에 아무거나 신고 가서 다음날 날이 밝으면 다시 자기 짝을 찾느라 요란을 떨기도 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실용성은 떨어지지만 고무신 색상도 다양하고 꽃무늬와 각종 캐릭터 문양 등 패션화 되어가는 경향이다. 그 오랜 세월 우리와 삶을 같이 했던 고무신. 돈만 있으면 값비싼 운동화와 구두를 마음껏 골라 신을 수 있는 현실에 고무신이 빨리 닳을까봐 손에 들고 다니고, 잃어 버릴까봐 고무신에 실로 이름을 새기고, 너무 좋아 새 고무신 냄새를 맡으며 품에 안고 잠들었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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