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수필가

"다시 지금은"이란 한 문장에 붙들려 책장을 넘기지도 덮지도 못하고 있다. 글은 짤막한 다섯 문장뿐이다. 작가의 가슴 밑바닥에서 끌려 나왔을 문장은 짧지만 강렬하다. "다시는 아무것도 빌지 않게 해달라고/ 스스로에게 빌어야 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라는 문장이 생각을 멈추게 한다.

지난 기억 속 한 꼭지에 머문다. 인간의 몸체가 한없이 보잘것없는 물체라는 걸 경험한 날이다. 한순간 마디가 잘린 나의 손가락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참으로 고왔다. 날씬한 몸매에 키는 나보다 두상 하나는 더 컸다. 입원 내내 그의 눈물을 본 기억이 없다. 아마도 내가 잠든 사이에 애끓는 속울음을 얼마나 울었으랴.

그 일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단다. 그녀는 도시 변두리에 있던 미장원을 정리한 지 삼 년째라고 한다. 두 해 정도 쉬었으나 평생 일을 놓았던 적이 없어서인지 쉬는 것도 그리 즐겁지 않단다. 그래서 들어간 회사란다. 그가 한 일은 긴 컨베이어를 타고 나오는 완제품을 포장하는 단순 작업이었다. 한순간의 방심이 큰 화를 부른 것이다. 컨베이어가 이상해 둘러보다 그만 바지가 벨트에 끌려 들어간 것이다.

내 작은 상처를 위로하고자 찾아온 이들을 내쫓듯 보냈다. 아니 손톱 밑을 찌르는듯한 통증에도 신음을 내지 못했다. 그녀의 불행을 보며 나의 불행은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미안해서다. 삶이 고단하다고 보이지 않는 신에게 악담과 애원을 번갈아 읊조리며 지내고 있던 터다. 내게 "다시는 그 어떤 것도 탓하지 않으리라. 더는 빌지 않으리라"라고 마음을 다지게 한 그녀가 다시 책 속 문장으로 호통을 치는 것만 같다.

그녀가 진심으로 편안하기를 기도한다. 다시는 땅을 딛고 두 발로 서지 못할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던 그녀도 환갑이 지났으리라. 어머니와 시골로 들어가 살겠다는 그녀와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 터라 소식은 알 길이 없다.

우리의 육신은 얼마나 보잘것없던가. 작은 가시에도 자신의 몸을 방어하지 못하고 붉은 피를 토해낸다. 나 또한 넘어지고 엎어져도 툴툴 털고 일어서던 몸은 어디 가고, 미끄러지는가 싶으면 여지없이 뼈가 부러지는 허약한 몸이 되어 있다. 그런 탓에 "다시는 아무것도 빌지 않겠다"라는 각오는 허망한 메아리로 들린다. 어느 사이 "넘어지지 않게 해주세요,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빌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런 탓일까. 작가의 문장이 허를 찌른다. 그가 적은 "다시는 아무것도 빌지 않게 해달라고/ 스스로에게 빌어야 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라는 문장이 욕심으로 질주하는 나를 깨워 앉힌다. 건강이 어디 빌어서 될 일인가. 스스로 건강한 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진리를 알면서…그래, 이만하면 충분하다. 지금 무엇을 더 원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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