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우(1947~ )
감정 카드를 긁었다
오늘도 울컥 어제도 울컥, 울컥
지지난주엔 거의 폭우였지
그래서 물었다
이만큼 슬펐으니
포인트는 얼마나 쌓였나요
창구 직원이 말했다
슬픔은 적립되지 않습니다
기쁨은 행사 중이고
눈물은 한정기간 사용 가능하며
분노는 괄호 안에 등록되었습니다
그럼 나는 뭘 쌓아왔죠?
이 무릎,
이 한숨,
이말 끝에 맺힌 저 보풀 같은 것들은?
그건 보상이 아니라 기록입니다
라고 했다
적립은 되지 않지만
증명은 남아 있다고
나는 감정 없는 영수증을 받았다
내 슬픔의
무적립 내역서
그건, 무이자 할부였다
인간에 대한 다양한 정의 가운데 평이하지만 그래도 인간을 감정의 동물이라 한 건 아직 내게 유효하다. 마치 여름 장마철의 날씨처럼 울고 짜고 웃고 화내고 소리치다가도. 뚝 그치고 나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쨍하고 해가 뜨기도 하니 말이다. 하루에도 열 번이나 넘게 끓어 넘치는 투가리 속 된장국 같은 게 우리 감정이고 정서가 아닐지. 억수로 쏟아지는 폭포 앞에 서면 우리 가슴 안에도 저만큼 거대한 감정의 격량으로 무너져 내리는 게 감정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슬픔이 쌓여 포인트로 산정되고 그것을 금액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감정을 피해갈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감정을 잘 담고 갈무리하여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상대의 감정을 동요시켜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들 상생의 지름길일 수 있겠다. 그러나 돌아보면 우리는 그 이상의 방향으로 감정을 대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유토피아에서 기쁨과 감동으로 삶을 이어간다고 한다면. 그건 바로 감정의 왕국에서 누리는 우리의 축복이기에 그렇다.
- 김완하(시인. 시와정신아카데미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