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자 사회적 낙인 심각]
[충청투데이 김영정 기자] "출소하기 전날, 사회로 나간다는 설렘보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갈 곳도 없었던 걱정이 더 컸던 걸로 기억합니다."
한때 잘못된 판단으로 범죄자가 됐던 김모(57) 씨는 교도소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하던 때를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김 씨는 교도소 수감생활을 마치고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돌아갈 곳이 없었다.
가족들은 수감 중 보낸 수십 통의 편지에도 답장이 없었고, 출소 후 여러 차례 찾아가봤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
김 씨는 1990년대 서울에서 간판업을 하면서 월 2000만 원을 벌 만큼 잘나갔지만, 아들이 희귀질환인 근이영양증 판정을 받으면서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감당하기 힘든 병원비로 모아둔 재산은 바닥을 보였고, 고심이 깊어질 때마다 술에 의지하면서 삶은 피폐해졌다.
결국에는 지인들이 꾐에 넘어가 도박에까지 손을 댔다.
김 씨는 "당시 판단이 흐려진 상황에서 주변의 꾐에 휘말리면서 결국 도박에 빠졌다"고 말했다.
도박빚에 시달린 김씨는 사기에 가담했고 결국 범죄자로 전락했다.
자기반성과 후회로 4년 6개월을 보내고 출소했지만 전과자라는 낙인은 그의 새로운 출발에 발목을 잡았다.
어렵게 일자리를 얻어도 출소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차가운 시선이 따라붙으며 끝내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근근이 일용직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버텼지만 갈 곳이 없어 노숙하며 추위를 견딘 날도 많았고, 그때마다 재범의 유혹도 스쳤다.
김 씨는 "차라리 교도소에 있으면 밥도 나오고 잘 곳도 있는데, 다시 들어가면 좀 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고 고백했다.
이때 그에게 도움을 준 곳이 출소자의 자립을 돕는 지역 지원기관이었다.
김 씨는 망설이다가 기관의 문을 두드렸고, 출소 5개월 만에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그는 그곳에서 지게차 훈련을 받아 자격증을 취득하고 기관과 협력관계에 있는 업체에 채용돼 지게차 운전원으로 일하고 있다.
김 씨는 "출소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받아준 자리였다"면서 "일 못해서 혼난 적은 있어도, 출소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은 적은 없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열심히 일하던 와중에도 그의 버팀목은 여전히 가족이었다.
답장이 없음을 알면서도 교도소 시절부터 꾸준히 편지를 썼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새 삶의 다짐을 전했다.
그리고 최근 가족과 다시 연락이 닿았다.
아직은 서먹하지만, 지금 번 돈 일부를 송금하며 관계 회복을 이어가고 있다
김 씨는 "언젠가 다시 함께 밥상에 앉아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김영정 기자 yeongjeong0896@cctoda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