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문화신문]
오후 4시면 집을 나선다. 야간반 중학 과정 공부를 하려는 것이다. 학교 정문을 지날 무렵, 멋진 승용차가 학교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섰다. 잠시 후 그 차에서 내린 분은 우리 반 ○○○ 여사님.
올해 칠순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과 열정에 반장으로써 후한 점수를 드리고 있는 터다. 여사님을 내려놓고 차는 금세 학교를 떠났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여사님의 입이 분주해졌다.
"극구 싫다는데도 불구하고 효자인 우리 아들은 엄마 공부하시는 모습이 너무 좋다며 오늘은 학교까지 차를 태워다 주지 뭡니까!"
혹자는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 하는 거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결단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재미도 없다면 이 풍진 광야를 과연 무슨 재미로 살아간다는 말인가.
나와 함께 주경야독으로 공부하시는 우리 대전시립중학교 1학년 3반 28명의 급우님 평균 연령은 70대다. 그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굴곡의 인생을 흡사 잡초처럼 살아오셨다.
남들보다 더 배우고, 그래서 부유하게 살고 싶었으나 현실은 냉갈령스럽기만 했다. 지독한 가난과 다산(多産)으로 인한 가족의 많음은 배움이라는 인생의 성공 계단을 여지없이 파괴했다.
이 거친 세상을 입때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죄 안 짓고 누구보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지만 교육의 기회는 허공에서 맴도는 뜬구름과 지독한 허기(虛飢)만을 안겼을 뿐이다.
그처럼 암울한 현실에서도 우리 급우님들은 자녀를 모두 잘 가르쳐 사회의 주축(主軸)으로 성장시켰으며 가정 경영에 있어서도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오셨다. 그리고 이제는 자녀들이 부모님의 학생 ‘복귀’를 더욱 칭찬하고 존경한다.
‘조지여하 경이무실 갈치기공 주일무적’(操之如何 敬而毋失 曷致基工 主一無適)은 "마음을 잡아 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을 집중하여 잃지 않아야 한다. 지극함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나에 집중하여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문신 이현일의 <갈암집>에 나오는 글이다. 뒤늦게나마 주경야독(晝耕夜讀)에 집중(集中)하고 있는 급우님들에게서 나는 잡초의 끈기와 자녀 효도의 아름다운 이중주를 발견한다. 그리곤 흐뭇함에 웃는다.
<홍경석 명예기자>
[이달의 칭찬대상자]
이름 및 소속 : 조동권 (대전평생교육진흥원 시민기자)
추천자 : 임경희 (상담사·강사)
조동권 님은 KT에서 정년퇴직하신 후에도 열정적으로 제2의 인생을 찾아 계획적으로 생활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멋진 분입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밝고 친절하게 대해 주시며, 주변을 활기차게 만드는 따뜻한 에너지를 지니고 계십니다. 또한 대전평생교육진흥원 시민기자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시며,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지식과 재능을 아낌없이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계시기에 진심을 담아 칭찬합니다.
이름 없는 따뜻함으로
효는 사라졌다고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는 효를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예절이나 제사, 혹은 부모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으로만 정의해 왔다. 옛 시대에는 그것이 당연한 미덕이었고, 살아가는 질서였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고, 가족의 형태도 소통의 방식도 달라졌다.
이제 누군가를 공경하는 마음은 명령에 따르는 태도가 아니라 존중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효의 모습이다. 효는 지금도 존재한다. 다만 그 얼굴이 달라졌을 뿐이다. 예전에는 무릎 꿇고 예를 올리는 것이 효였다면, 지금은 부모님의 스마트폰에 앱을 깔아드리고 영상통화로 하루를 묻는 것이 효다.
효는 단방향의 도리가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교차점이라는 것을 우리는 서서히 깨닫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부모를 떠올리는 그 순간 잠깐 시간을 내어 안부 전화를 걸고, 고맙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말할 수 있게 되는 것들이 전부 효다. 우리는 자라면서 부모의 희생을 보았고, 그래서 언젠가 그 마음을 닮고 싶어졌다. 이름 없는 배려와 무심한 온정들이 결국 우리 안에 조용히 뿌리내렸다. 효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말 대신 밥상을 차리고, 누군가는 말 한마디 대신 한밤중 약국으로 달려간다. 누군가는 돈을 벌어 부모의 어깨를 덜어주고, 또 다른 누군가는 먼 도시에서 부모의 안부를 걱정한다.
어쩌면 효는 그렇게 말보다 오래 남는 것이다. 말 대신 행동으로 행동 대신 기억으로 남아 어느 순간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지금 이 순간 효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어떤 이는 침묵으로 효를 지키고, 어떤 이는 발걸음으로 효를 향한다. 효는 무겁지 않다. 단지 마음을 전하는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래서 효는 반드시 특별한 날에만 실천해야 하는 거창한 의무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그저 함께 있어 주는 시간 속에 깃들어 있다. 효는 과거의 그림자가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살아 숨 쉬는 우리의 이야기다.
<김수아 명예기자>
황산유람(黃山遊覽)길 제3구간 "을문이효길"이야기
‘효’는 유교 사상의 대표적인 덕목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받은 것을 자녀들이 효로써 보답한다는 부자자효(父慈子孝)라고 할 수 있다. 부모와 자녀는 사랑과 효로 이루어진 쌍방향적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요새는 많은 사람이 효가 ‘사라졌다’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도 전통사회에서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공동체보다는 개인을 우선시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여 부모를 봉양하는 과거의 효행이 사라졌다고 느낄 수 있다. 사회가 변하고 생활방식이 변화해온 만큼 효를 실천하는 방식도 조금씩 변화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10번이나 기록되어 있는 명망이 높았던 선비 ‘강응정’과 아픈 어머니를 위해 고깃국을 사러 양촌장에 가는 효행 이야기를 따라 걸으며 시대를 관통하는 효의 가치를 찾아보고자 한다.
황산유람길 제3구간 을문이효길은 약 11㎞, 소요시간 3시간 정도의 코스로 ‘양촌장터-강응정선생묘-효자마을 함적리-효암서원-병암유원지’ 구간이다.
지난 6월 9일 한국유교문화진흥원에서 개최한 선비정신 함양을 위해 기획하고 개발한 황산유람길 중 제3구간인‘을문이효길’ 걷기대회에 참여하였다.
효자를 중심으로 모셔진 서원인 효암서원에서 이영서 효암서원장과 강응정 선생의 후손인 강원희 및 걷기대회 참여자들이 함께 알묘를 진행하여 효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양촌장터부터 시작하여 병암유원지까지 이어지는 ‘을문이효길’은 강응정의 효행을 따라 걷는 길이다. 그의 발자취와 논산천을 헤엄치는 효자고기 을문이는 효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수백 년간 이 길에 남겨진 이야기는 시대를 관통하여 ‘효’라는 가치로 연결되며 현재에 숨 쉬고 있다. 효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효행이 아닌 정신적 가치로서 효심(孝心)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효심은 어느 시대나 하나이지만 드러난 효행은 시대마다 다르다. 각자의 효심을 가지고 본인만의 효행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효라고 할 수 있다.
<이병주 명예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