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문화신문]

▲ 병상에 누워 계신 할머니 손을 두 손으로 꼭 잡는 손녀. Copilot AI 이미지
▲ 병상에 누워 계신 할머니 손을 두 손으로 꼭 잡는 손녀. Copilot AI 이미지

저는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며 자연스럽게 ‘효’라는 가치를 배우고, 몸소 실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엄마께서는 저를 출산하실 때 할머니께서 산후 조리만 해 주러 오셨다가, 출산 후 엄마께서 산후우울증이 오셔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저를 돌봐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가 끝나면 늘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반겨 주셨고, 덕분에 저의 하루는 따뜻한 일상으로 마무리되곤 했습니다. 두 분은 제 삶의 일부였고, 제 성장의 중심이었습니다.

특히 할머니께서는 오랜 지병으로 병원에 계신 시간이 많으셨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저는 자연스럽게 할머니 곁을 지키는 일을 당연하게 여겼고, 그 시간을 통해 누군가를 돌보는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물 한 잔을 떠다 드리는 일, 높게 베개를 받쳐드리는 일, 혹은 그저 손을 꼭 잡고 함께 잠드는 일. 지금 돌이켜보면 아주 작은 행동들이었지만, 그 안에는 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당시엔 효도라는 말의 뜻조차 정확히 몰랐지만, 할머니께서 미소 지으실 때마다 제 마음도 포근해졌습니다.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 날, 저는 세상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할머니의 빈자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고, 오랫동안 제 마음 한켠을 아프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슬픔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여전히 제 곁에 계신 할아버지 덕분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남기고 가신 사랑과 기억들을 할아버지와 함께 나누며, 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는 자주 할아버지를 찾아뵙고, 함께 식사를 하곤 합니다.

그렇게 소소한 일상을 함께 나누는 순간들 속에서, 저는 효란 거창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분들의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채워드리는 일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어린 시절엔 작은 손으로 할머니의 손을 잡고 온기를 나눴다면, 지금은 조금 더 자란 손으로 할아버지의 어깨를 토닥이며 제 진심을 전하고 있습니다.

<김수아 명예기자>

이달의 칭찬대상자
이름 및 소속 : 장형미 (노은2동 새마을협의회 지도자)
추천자 : 정윤용 (노은2동 새마을협의회장)

장형미님은 소외계층을 위해 몸소 봉사를 실천하며 아낌없이 나누는 분입니다. 특히 마스크가 귀하던 시절, 지인을 통해 어렵게 확보한 마스크 210만장을 노은2동행정복지센터 장애인복지과에 기부하는 등,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실천하며 따뜻한 나눔을 실현하셨습니다. 동사무소 등 지역사회에 필요한 일이 있다면 기꺼이 나서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봉사하는 장형미 님을 진심으로 칭찬합니다.

봄을 몰고 온 소녀

어느 책에서 읽은 글인데 너무 감동적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부모가 돈이 있는 싹을 알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빼앗아 가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데 이 소녀는 하늘에서 내린 인품의 소유자 같다. 너무나 기특하고 효성스럽다. 어린 나이에 고생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다. 효심이 준령을 넘고 하해를 건넌다.

아직 날씨가 쌀쌀한 어느 봄날, 아동복 가게에 허름한 차림의 아주머니가 소녀와 함께 들어왔다. 자기 딸이라고 소개한 아주머니는 소녀의 티셔츠 하나 골라 달라 부탁한다. 엄마도 딸에게 마음에 드는 것 고르라 하고, 딸은 엄마가 골라주면 아무것이나 좋다 한다.

옷을 고르면서 나누는 모녀의 대화에서 사랑이 넘쳐난다는 걸 주인도 감지한다. 모녀는 한참 만에 만 원짜리 티셔츠를 골랐다.

그런데 몇 시간 후에 딸이 몹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가게로 찾아와 물려줄 수 없느냐고 묻는다. 주인은 약간의 불쾌감을 감추지 못한다. 딸의 얘기를 듣고 주인도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감추지 못한다. 엄마가 시장 모퉁이에서 채소 장사를 하는데 종일 벌어도 만 원을 못 벌 때가 많다는 것이다.

엄마한테 미안해서 이 옷을 입을 수 없다고 말하는데 순간 주인의 코끝이 찡해왔단다. 고사리 같은 손을 가진 소녀가 큰 사랑을 가지고 왔으니 주인은 그 소녀가 순간 천사가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 않는가.

그래 주인은 옷값으로 만 원을 내주고 그 옷은 그 소녀에게 도로 주었다는 얘기다. 착한 딸을 둔 엄마가 부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가슴 넓은 주인의 아름다운 마음씨에도 놀란다. 소녀는 봄을 몰고 온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였다.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세상에 올 때 갖고 온 것이 하나도 없다. 빈손으로 왔다. 소유물은 모두 세상이 잠시 쓰라고 빌려준 것이다. 그러하기에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은혜를 갚아야 한다. 아이 어머니도 그렇고, 소녀도 그렇고, 주인도 그렇다. 호수는 일종의 거울처럼 옆에 있는 나무의 그림자를 담는다. 바위틈에 솟아나는 샘물을 본다. 굳은 땅과 딱딱한 껍질을 뚫고 여린 싹이 돋아나는 것을 본다. 그 소녀가 보이게 한 것들이다.

<문희봉 명예기자>

국고개와 효심공원

이복은 고려의 아전이고 효자였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부친을 잃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어머니는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생활이 불편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남의 집에 가서 일을 해주고 음식을 얻어다가 어머니를 봉양했다. 하루는 읍내 부잣집에서 일을 하고 고깃국 한 그릇을 얻어서 어머니께 드리고자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고개를 오르다가 미끄러져 국을 엎지르고 말았고, 어린 이복은 너무 슬퍼 그 자리에 엎드려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이후로 사람들은 효자가 국을 엎지른 고개라 하여 이 고개를‘국고개’라고 하였다. 마을도 한자어로‘갱경골(羹傾谷)’이라 불렀습니다.

국고개 옆쪽으로는 효심공원이 있습니다. 효심공원은 소중한 문화유산인 ‘효’의 가치와 의미를 증진시키기 위해 향덕과 이복의 이야기를 주제로 조성된 공원입니다.

향덕은 8세기 신라 경덕왕 시절의 인물로, 지금 공주시 소학동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으로 칭찬이 자자하였습니다. 755년(경덕왕14)에 온 나라에 심한 흉년이 들어 백성들은 굶주렸고, 전염병까지 창궐했습니다. 특히 종기로 고생하시는 어머니는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향덕은 밤낮으로 간병에 정성을 다했지만 낫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곪은 종기를 입으로 빨아내어도 병세는 더해만 갔고, 마지막 방법으로 자신의 넙적다리 살을 베어 국을 끓여 드렸는데. 놀랍게도 이를 드신 어머니는 점차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또 다리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추운 겨울에 어머니께 드릴 고기를 잡기 위해 냇가로 나가 얼음을 깨고 강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깨진 얼음들이 향덕의 넓적다리 상처를 건드리며 피가 흘러 강을 붉게 물들였다. 후세 사람들이 이 강을 혈흔천(血痕川)이라 부른 연유이고, 지금도 공주에서 논산으로 이어지는 길에 혈흔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국고개문화거리와 ‘국고개에 흐르는’효심이라는 테마로 다양한 곳에 설치된 예술작품도 구경하며, 효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어떨까요?

<이병주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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