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청주시 1인1책 펴내기 강사
양념으로 뒤범벅되었던 그릇들을 씻어 하나하나 정리하고 주방바닥 걸레질까지 하고나서 며칠째 입었던 앞치마를 벗었다. 이곳저곳에 불그레한 양념과 마르지 않은 칙칙한 물기자국들이 볼썽사납다. 세제를 풀어 앞치마를 담그다 불현듯 엄마가 생각났다. 아, 이제는 가물가물해진 먼 기억속의 울 엄마 누런 광목 앞치마가 눈에 어린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엄마의 앞치마 자락은 불룩해지곤 했다. 남새밭 가을걷이가 한창일 때나 뒷동산에 있는 과수원에서 해종일 일하다 돌아오는 날에는 엄마의 앞치마자락은 언제고 불룩했다. 어느날에는 대문을 들어서며 불룩해진 앞치마의 무게에 눌려 걸음마저 뒤뚱거렸다. 석양이 뒷산을 넘어갈 즈음이면 불룩한 앞치마를 부여잡고 집안으로 들어오시는 엄마의 허리는 굽어있었다.
고즈배기 캐내며 따비밭을 일구시던 땀에 전 아버지의 곁에서 엄마는 왼 종일 가을을 앞치마에 담고 계셨나보다. 대청마루에 엄마의 앞치마가 풀어 헤쳐지면 그안에서는 서리태,깻잎,고구마, 알밤 몇톨까지 갖가지 가을걷이가 한가득 쏟아져 나왔다. 하루 종일 앞치마를 동여맸던 굽은 등허리에는 고단하지만 억척스런 촌부의 아우라가 서리곤 했다.
발목까지 내려오던 꾀죄죄한 광목 치마는 일 복 많은 엄마의 젊은 날을 대변했던 것 같다. 엄마의 앞치마는 먹거리만 담겨졌던 건 아니다. 철부지 자식들의 칭얼거림도 넓은 치마폭에 싸안았고 삶의 희비애환도 앞치마 폭에 속울음이되어 담겼는지도 모른다. 엄마의 앞치마 안에는 낭만도 있었다. 들꽃을 유난히 좋아하시던 엄마는 배불리 먹는 것보다 고운 꽃 보는 것이 더 행복하다 하셨다. 그래서인지 봄이면 진달래와 조팝꽃, 가을이면 구절초와 들국화 한 무더기와 단풍잎 몇장을 치마폭에 담아와 집안 곳곳에 계절의 꽃빛을 환하게 들여 놓곤 하셨다.
내 어릴 적엔 일에 찌든 엄마의 앞치마는 항상 잿빛이라 생각했다. 엄마의 연륜을 훌쩍 넘기고 돌이켜보니 엄마 앞치마 빛깔은 푸른 바다에 떠오르는 여명의 찬란한 태양빛이었다. 역경과 고난도 참아내고 인내하는 저력이고 희망이었다. 빛 바랜 누런 광목 앞치마는 여러 몫을 해내던 삶을 무언으로 보여준 엄마의 자화상이다. 그것이 자식에게는 교훈이되어 인생의 위대한 지침서가 되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