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화 대전시교육청 교육복지안전과 주무관

열대야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나날들이다. 열기가 고여있는 답답한 방에 가만히 누워 창문을 바라보면 창문의 크기만큼 네모지게 재단된 밤하늘이 보인다.

이런 여름밤에는 어렸을 때 살았던 주택에서의 추억이 떠오른다.

여름밤 옥상에 돗자리를 깔고 옆에는 모기향을 피워놓고 누워있었던 기억과 아무것에도 가로막히지 않고 광활하게 펼쳐진 밤하늘이.

돌아보니 나에게 그 주택의 옥상은 각별했다. 어떤 날은 옥상에 올라가 저 멀리 밤하늘 한구석에서 반짝거리는 불꽃놀이를 구경하기도 했고, 옥상까지 뻗쳐있는 목련 나무와 감나무 이파리를 잡아당기기도 하면서, 아직 덜 익은 땡감을 따면서 놀기도 했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그 집은 더 이상 없다. 재개발로 인해서 철거됐고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약간은 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린 기분 때문인지 재개발에 대한 나의 마음은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요즘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는 동물에 비유하자면 바뀐 계절을 맞이해 털갈이라도 하는 것일까 싶다. 묵은 것들은 털어내고 새롭게 단장을 하는 중인 모양이다.

낡은 주택가를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을 하는 곳이 흔하게 보인다.

재개발로 인해 해당 지역의 가치 상승, 좀 더 쾌적해진 거주환경, 세련되고 말쑥한 도시 미관 조성 등 여러 가지 장점도 있겠지만 내게는 왠지 도시가 조금 심심해졌달까.

자전거를 끌고 갑천으로 나가 만년교까지만 갔다가 돌아오는 루틴에서 어느 날 도전 의식이 발동해 만년교를 지나쳐 가수원동까지 쭉 올라간 적이 있다. 자전거길을 따라 달리다 보니 나무가 울창한 산과, 과수원과 비닐하우스가 있는 한적한 풍경에 이런 좋은 곳을 왜 이제야 알았지?

감탄하며 친구를 데리고 종종 와야겠다는 결심을 했던 곳은 나중에 다시 가보니 재개발을 위해 말끔하게 닦여졌고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됐다.

대문 너머로 구경하곤 했던 어느 집주인이 정성스레 가꿔놓은 화단들과 누군가 땅 모서리에 알뜰하게 만들어놓은 아기자기한 텃밭들.

어쩐지 그리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작은 골목길들도 재개발로 사라져버렸다.

자꾸만 변해가는 도시를 아쉬워하는 것은 변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개인적인 성격 때문일 수 있겠지만, 어떤 공간이 사라지면 거기에 머무른 기억들도 같이 사라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도시는 계속 변해갈 것이다. 말 그대로 대전(大田) 시절의 논과 밭들이 이제는 사라진 것처럼.

그러니 아쉬워하면서도 추억의 공간들은 보내주고 새로운 공간들을 맞이하여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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