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 단국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우울하다는 말은 진료실에서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진료실에 있다 보면 우울하다고 하면서도 치료받을 필요가 없다고 고집을 피우다가 가족의 강압에 가까운 권유를 받고 방문하는 환자를 흔히 볼 수 있다. 다리가 부러지거나 열이 나면 스스로 병원에 오면서 왜 사람들은 우울하거나, 죽고 싶다고 하면서도 병이 아니라고 하고 치료를 권유하는 의사에게 불신의 눈빛을 보내는 걸까?ㅤ"자신의 병은 자신이 더 잘 안다."라는 말을 저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자살의 위험성이 높아 몇 번의 설득에도 돌아서는 환자와 가족을 보면 의사로서 힘이 빠지게 된다. 그럴 때마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는 것만큼 지역사회의 정신건강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충남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운영을 맡고 있는 저자의 책임감이 더 무거워지는 것 같다.
정신건강복지센터나 민간기관의 노력으로 인해 이전보다는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개선이 많이 이뤄졌지만 매스컴에서 볼 수 있는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낙인, 잘못된 정보나 선입관 때문에 여전히 정신건강의학과의 치료 문턱은 높다. "정신건강의학과 약은 중독이 되고 한번 먹으면 끊기가 어렵다.", "약을 먹으면 치매가 빨리 오고 바보가 된다."라는 말이 사실이냐고 물어보는 환자나 보호자가 아직 적지 않다. 약이나 전문적인 치료를 하지 않고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는 자칭 전문가나 기관도 흔히 볼 수 있다. 병원에서 시행하는 치료방법 외에 다른 모든 비약물적 치료가 근거가 없거나 효과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반드시 약물이나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병으로서의 우울‘증’과 가벼운 운동이나 상담 등의 다른 방법을 통해서 해결되는 우울‘감’은 구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럼 어떤 경우에 약물치료와 같은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할까? 우울한 기분이 하루 종일 2주 이상 지속되면서 직업적으로, 사회적으로 또는 가정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라면 그냥 저절로 좋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직장에서도 집중이 안 되고 무기력해 제대로 맡은 일을 못한다면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즐거움이 없어지고 삶에 대한 가치를 느끼지 못하면서 죽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고. 자살시도나 자살 위험성이 있다면 입원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다.
우울증은 뇌의 호르몬, 정확하게는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으로 생기는 병이라고 할 수 있다. 약물치료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뇌에 자극을 주는 방법으로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바로 잡을 수 있고 효과적으로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다. 폐렴이면 항생제 치료를 하고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듯이 우울증도 적절한 치료로 충분히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가까운 미래에 적어도 낙인이나 오해로 우울증 치료를 주저하는 일이 없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