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청주시 1인1책 펴내기 강사

사방을 둘러봐도 곱지 않은 곳이 없다. 꽃은 분명 아니건만 그윽하게 아름다운 풍경들이 세상천지 곳곳에 내렸다.

나무마다 지난여름 땡볕을 견디고, 광풍을 지나온 아픈 궤적을 단풍이란 흔적으로 물들이는 겸허한 입명을 받아드리는 계절이다. 나도 같은 계절과 같은 시간을 함께 달려왔는데 지금쯤이면 내 그림자도 저리 곱게 비추어질까. 가을빛이 완연한 나무들 사이를 걷다 보니 나의 형상은 너무나 작고 보잘것없는 것 같아 문득 움츠러든다.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내가 지나온 시간을 뒤집어 보니 참 숨 가쁘게 달려왔다. 깜냥이 되는지 재보지도 않은 채 목표를 향해 꽂힌 깃발만 쳐다보며 앞으로만 달려온 바쁜 시간이다.

숨 고르기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달려가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나름 행복했다. 늘 가슴에 품고 살던 집필 행진에 동참하며 이곳저곳에서 글감을 찾고 나름의 기량을 추수했으니 말이다.

사람의 마음은 참 변덕스럽다. 촌각을 다투며 이룩한 성과물을 앞에 놓고 보니 이젠 허탈하다. 허점투성이가 그제야 눈에 들어오고 자족하지 못하는 것은 교만일까, 욕심일까.

세 번째 수필집을 세상에 내보이며 덕담과 함께 찬사까지 두둑이 챙겨 받았지만, 그때마다 얼굴이 달아오르며 마음이 편치 않다. 더 겸허해지고 정진하라는 일침임을 알기에 풀지 못한 숙제 한 보퉁이를 또 심연에 던져놓는다.

완연한 만추다. 이쯤이면 내게도 쉼이 필요하다며 내 안의 무언가가 마음을 잡아끈다. 그래. 마음이 끌릴때 어디든 훌쩍 떠나 모든 일상 접어두고 며칠만이라도 질펀하게 쉬어보자. 내가 나에게 주는 가을 선물이라 명명하며 과감하게 떠나보리라. 안온한 보금자리 박차고 떠나온 여정이 더 고단할지라도 후회하지 않으리.

수처작주(隨處作主)란 말처럼 어느 곳이든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 했으니 심지를 세우고 나선다면 무엇이 두려우랴. 망망대해 넘실대는 푸른 파도를 만나면 그곳에 쉼표하나 던지며 글감 하나 낚으며 서두르지 않는 여유가 지혜란 걸 퍼뜩 터득해도 좋으리.

인생은 고난과 함께 익어가는 것이라 했다. 다른 세상의 한 단면이라도 마주하며 옳고 그름을 헤아릴 줄 아는 혜안을 조금이라도 키울 수가 있다면 방랑길에 얻은 대가로 자족하리라.

여행은 꼭 무엇을 얻어 손에 쥐고 돌아오려고 떠나는 것만은 결코 아니다. 나의 여행길은 언제고 제자리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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