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학교폭력심의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中. [원인] 고무줄식 징계, 심의위원 전문성 및 투명성 부재
심의위원 전·현직 교원, 법조계, 경찰 등 구성… 30% 이상은 관할지역 학부모 위촉
학폭위 척도 점수화 기준 없어 같은 사안이라도 심의위원 개인 주관따라 결정 차이
심의위원 정보 공개 주장 나와… 학폭심의 늘어 면밀한 조사 불가능한 한계 짚기도

심의위원. 그래픽 김연아 기자. 
심의위원. 그래픽 김연아 기자. 

[충청투데이 최윤서 기자] 현행 학교폭력 심의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명확한 조치 기준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심의위원 개개인에 따라 ‘고무줄식 잣대’가 적용돼 일관된 처분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 일부 심의위원들의 전문성 및 자질까지 지적되는 상황에서 학폭위를 바라보는 학부모들의 불신은 더욱 커지고 있다.

현재 학교폭력심의위원회는 △심각성 △지속성 △고의성 △반성정도 △화해정도 총 5가지 기준을 척도로 점수화 해 제1호(서면사과)에서 제9호(퇴학)로 분류, 최종 조치 결과를 통지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5가지 기준을 점수화 할 일괄된 기준이나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같은 사안이라도 학교 사안보고서가 어떻게 보고되느냐에 따라, 학폭위 심의위원 개인의 주관에 따라 조치 결정에는 큰 차이가 발생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치 결과에 불복하는 학부모들은 학폭위 심의위원들의 전문성과 자질에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심의위원은 전·현직 교원이나 법조계, 경찰, 청소년 전문가 등으로 구성하고, 전체 위원의 30% 이상은 관할 지역 학부모로 위촉하도록 돼 있다. 학교폭력을 자칫 형사 재판화 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학부모를 참여시켜 선도 기능을 강화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학교폭력 조치 결과가 강화되며 학폭 심의위원들의 책무성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현재 충청권에서 학폭 소송을 수임 중인 김진기 변호사는 "명확한 조치 기준이 없다보니 심의과정에서 간혹 위원 개인의 삐뚤어진 주관이 반영돼 조치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또 중립적 위치여야 할 교육지원청 측 의견에 영향을 받는 상황도 더러 존재한다"고 전했다. 이어 "학폭위 조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커졌으나 심의위원이 가져야 할 책무성은 강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학폭의 유형과 지속성, 심각성, 고의성 등을 제대로 조사하고 일관된 처분이 내려져야 하지만 심의위원 개인의 주관에 따라 단편적인 사건을 확대 해석하거나 감정에 휩쓸리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심의위원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공정성, 2차 피해 등을 이유로 학폭 심의위원에 대한 정보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학폭 피해 학생의 학부모 A 씨는 "학폭위의 책임과 권한은 커지고 있는데 심의위원의 투명성을 어느 정도는 강화해 공신력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심의위원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뤄진 기피위원 신청절차 또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학폭심의가 최근 두 배 가까이 늘어나며 면밀한 조사가 불가능한 구조적 한계를 짚기도 했다. 실제 지난해 대전지역 학폭 신고건수는 총 1776건이며 이중 심의가 이뤄진 비율은 단 35.7%(634건)에 불과하다. 학교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기준이 있긴 하지만 학부모가 학폭 심의를 원하면 무조건 신고를 하도록 돼 있어 경미한 사안도 적지 않다.

정재준 한국학교폭력예방연구소장은 "일단 학폭 심의 건수 자체를 줄이는 게 급선무다. 경미한 사안은 되도록 학내에서 교육적 해결을 통해 최대한 마무리 해 학부모간 싸움으로 번지지 않게 해야 한다. 지금 이대로라면 심의위원 규모를 훨씬 늘려 신고사례 한 건 한 건 제대로 된 조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윤서 기자 cys@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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