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이상 53.6% ‘키오스크 조작 어렵다’ 응답
"젊은 사람·직원에게 알려달라 하기도 눈치보여"
서울·경기지역 공공·민간분야 키오스크 대부분
표준 글씨 크기 12mm보다 작은 폰트 사용
점자 표기·음성 안내 갖춘 키오스크 매우 적어
휠체어 탄 장애인, 높은 높이에 이용 어렵기도
금융 서비스도 비대면… 점포 폐쇄 늘어 불편↑
[충청투데이 김성준 기자] "화면 앞에서 더듬거리고 있으면 옆에서 젊은 사람들이 알려주기도 하는데 민망하죠. 매번 바쁜 직원들 불러서 알려달라고 하기도 미안하고, 여러모로 불편해요."
대전 서구에 사는 60대 김민국 씨는 최근 한 패스트푸드점을 방문했다가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점포 안에 키오스크(무인 주문기) 말고 주문을 받는 직원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원하는 메뉴를 구매하기 위해 키오스크 앞에서 5분 넘게 헤매야 했다. 대전 서구에 사는 50대 박하영 씨 역시 최근 한 생활용품 판매점에서 물건을 사는 데 애를 먹었다. 직원이 상주하는 계산대 1곳을 제외한 나머지 계산대 모두 스스로 물건값을 계산해야 하는 무인계산대였기 때문이다. 박 씨는 무인계산대 앞에서 한참 동안 헤매다가 결국 직원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물건을 살 수 있었다.
키오스크나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비대면 방식이 일상화되면서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디지털 소외계층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 문화가 더욱 빨라지면서 고령층과 장애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이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약계층에게 ‘벽’으로 다가오는 비대면의 일상화
한국소비자원이 키오스크 이용자 500명을 대상으로 이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60대 이상의 고령층은 키오스크 이용이 불편한 이유로 ‘조작 어려움’(53.6%)을 꼽았다. 20~50대 응답자가 ‘기기오류’와 ‘뒷사람 눈치’를 불편 사례로 응답한 것과 대조적이다.
60대 이상 이용자는 ‘화면의 글씨 크기가 너무 작음’(23.2%)을 불편한 이유로 꼽은 비율도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았다.
키오스크 이용 만족도 역시 60대는 3.31점으로 전연령의 평균 만족도(3.58점)보다 낮게 나타났다. 또 전연령대 응답자 57.6%가 비대면 거래를 선호한다고 응답한 반면 60대 이상은 62.0%가 대면 거래를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키오스크 이용 중 경험한 피해 유형’ 조사 항목에서도 60대 이상은 ‘키오스크 이용 강제’(47%), ‘주문 실수 인지 불가’(28%)로 인한 피해가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금융서비스 등을 중심으로 비대면 서비스가 가속화되면서 고령자가 겪는 불편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1년 말 국내은행 점포수는 6094곳으로 2020년 대비 311곳 감소했다. 폐쇄점포는 2018년 23곳에서 2019년 57곳으로 증가한 뒤 2020년 304곳을 기록하는 등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점포 폐쇄는 비대면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에게 불편으로 직결된다.
디지털 정보격차로 인한 고령층의 일상 속 불편은 다른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1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고령층의 디지털정보화수준은 69.1%에 불과했다.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 보유 여부, 이용 능력 등을 종합한 수치다.
고령층의 디지털정보화수준은 장애인(81.7%)과 저소득층(95.4%), 농어민(78.1%)과 비교해도 매우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고령층의 ‘생활 서비스 이용률’은 84.2%로 일반국민 88.3%보다 4.1%p 낮았다.
특히 50대의 디지털정보화수준이 96.8%인 반면 60대는 77.1%, 70대 이상은 46.5%로 나이가 들수록 정보화수준이 낮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디지털 정보격차는 4대 정보취약계층 중 하나인 장애인에서도 도드라졌다. 2021년 기준 장애인의 컴퓨터와 모바일기기 이용 능력은 각각 41.0%, 57.1%로 일반국민 수준(59.1%, 71.1%)보다 각각 18.1%p, 14%p 낮았다. 생활서비스 이용률 역시 81.8%로 일반국민(88.3%)은 물론 고령층(84.2%)이나 저소득층(87.5%), 농어민(82.9%)보다 낮게 나타났다.
◆아직 갈길 먼 정보격차 해소…전문가들 "교육 강화해야"
디지털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정보격차가 심해지고 있지만 관련 규정은 여전히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올해 2월 개정된 키오스크 한국산업표준(KS) ‘무인정보 단말기 접근성 지침’에 따르면 키오스크는 고령자나 장애인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하지만 소비자원이 지난해 5~8월 서울·경기지역 공공·민간분야 키오스크 20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4대(70.0%)는 표준 글씨 크기(12㎜)보다 작은 폰트를 사용했다. 12대(60.0%)는 기기나 첫 화면에 이용방법을 표시하지 않는 등 지침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각장애인이 키오스크를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점자 표기나 음성안내를 갖춘 키오스크 역시 1대(5%)에 불과했다.
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키오스크를 조작할 수 있는 최대 높이(1220㎜)보다 높게 설치된 키오스크는 17대(85.0%)나 됐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소외계층을 배려해 기존 오프라인 이용 창구를 남겨놓는 동시에 관련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손의성 배재대 기독교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휴대폰 등의 정보기기에 대한 교육은 많은 편이지만 키오스크에 대한 교육은 아직까지 부족한 편"이라며 "당분간 전화 주문 등 기존 이용 통로를 열어 놓으면서 지자체가 나서서 키오스크 이용법 등 디지털 소외계층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진섭 배재대 실버보건학과 교수는 "키오스크는 고령층이나 장애인에게 굉장히 두려운 존재로 인식돼 주문 과정에서 겪는 많은 일들이 심리적 부담으로 다가온다"며 "사회적 취약계층이 키오스크를 좀 더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 등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준 기자 juneas@cctoda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