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정 사회적협동조합 휴먼케어 이사장

시골에서 자라며 피아노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초등시절 피아노학원이 처음 생기고 그때 우리 반에 피아노학원에 다니는 친구는 딱 한명이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그때 나는 못했으니, 내 아이들에게 적어도 소야곡 한곡쯤은 칠 수 있는 문화인으로 키우고 싶었는지, 아이를 설득해 피아노학원에 등록하고, 고작 서너 달이나 지났을까.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기도 전에 좁은 집에 중고피아노를 들여놓았고 모두들 예상하시다시피 피아노는 아이들 성장기 내내 처치 곤란의 짐짝이 되었던 기억이 있다.

비단 나만의 경험일까. 대한민국 사람들은 대부분 피아노를 취미활동의 도구로 사용하기보다는 ‘소장품’으로 여기는 듯하다. "조율이 힘들다, 훼손된다" 이유가 다양했고, 심지어는 이웃에 시끄러우니 집에서 피아노를 치면 안 된다며 훈육을 하는 교육 방식은 또한 어떠한가. ‘피아노’라는 악기의 용도 자체를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피아노를 치며 문화적으로 풍요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피아노를 시작하지만, 결국은 피아노를 소유하는데 의의를 갖는 삶은 안타깝다.

우리집 피아노야 일찌감치 법인이 위탁한 아동시설로 이전해, 지금은 이 다함께돌봄센터를 이용하는 아이들이 누구나 부담 없이 피아노를 치며 노는 놀잇감으로 쓰고 있으니 다행이지만….

피아노는 공공재일 수 없을까. 소유하는데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를 연주하며, 또는 들으며 함께 행복을 느끼는 것이 진짜가 아닐까.

돈을 목표로 사는 시대는 끝났다. 자본을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를 생각하는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억만금을 쌓아놓고,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존중을 받지 못하는 시대는 어떠한가? ‘사회적 신뢰’를 기반으로 가치 있고 소중한 일에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시대로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그 중심에 ‘돌봄’이 있다. 시대의 변화에서 돌봄의 필요성을 찾는 것 이상으로 이제는 국가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 ‘사회적 돌봄’을 설파하는 시대로 전진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응당 그 돌봄을 실천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수반되어야 한다. 여전히 갈길이 멀지만, 2026년에는 돌봄종사자의 처우개선이 화두가 되는 모양이다. 그간 ‘좋은 돌봄’은 당사자의 희생과 헌신만을 강요하였다. 열알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첫 목표는 ‘돌봄종사자에 대한 존중’이었다면, 이제 나아가 ‘돌봄’은 국가의 전략산업이 되는 것이다. 국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활동으로 돌봄이 존중받고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로의 대전환은 지금 진행형이다. 목표가 아니라 수단으로써의 ‘돈’이었듯, 각자 국민의 행복을 찾아가는 삶의 방식으로서 존중되어야 하는 돌봄을 이야기하는 시대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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