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영 사단법인 세계골프지도자협회 이사장
며칠 전 필자의 큰누님이 회갑을 맞았다. 예전 같으면 호텔이나 식당을 대관해 축하 화환과 현수막이 가득한 가운데 잔치상을 차려 가족과 친지, 친구 지인들이 모여 성대한 축하연을 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은 바뀌어 가족끼리 조용히 식사나 하자는 제안조차 누님은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필자는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가 섭섭해 난화분을 보내려 조카에게 전화를 했다. ‘축회갑’ 난화분을 보내려 하니 누님의 정확한 근무지 주소를 알려 달라 하자, 조카로부터 "삼촌, 요즘은 ‘축회갑’ 같은 문구는 촌스러워요. 좀더 참신한 문구를 써보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말이 낯설면서도, 회갑을 회갑이라 부르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한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실감했다.
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회갑은 인생의 거대한 의례였다. 예순은 오래 살았다는 축복이자, 가문과 공동체가 한 생을 예우하는 통과의례였다. 1969년 제정된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회갑연은 성년례, 혼례, 상례, 제례와 더불어 인생의 전환점을 이루는 큰 의례로 보았다.
조선시대에는 평균수명이 40세 남짓이었고,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55.4세에 불과했다. 따라서 예순을 넘긴다는 것은 생존 그 자체가 경사였다. 그러나 지금은 기대수명이 83세를 넘고, 100세 인생이라는 말이 현실이 되었다. 회갑은 더 이상 종착점이 아니라, 두 번째 인생의 출발점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수명이 늘었지만 사회가 회갑을 바라보는 의식의 나이는 그만큼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여전히 60대에 머물러 있고, 젊은 세대는 그런 세대를 꼰대로 묶어 세대간 벽을 그어 버린다. 그 사이 60대는 노인도, 청년도 아닌 사회적 경계선 위의 세대로 남았다.
회갑을 축하받는 것이 부담스러워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직 젊다는 자기 인식과 노인이 되었다는 사회의 인식 사이의 간극, 그 어정쩡한 위치가 축하 대신 어색함을 낳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인의 평균 퇴직 연령은 53.7세이고, 퇴직 후 다시 일을 시작하는 2차 경제활동 인구는 60세 이상에서 급격히 늘었다. 예순 이후가 오히려 활동기의 연장선이 된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제도는 여전히 회갑과 노인을 동일시한다.
나이에 비해 신체적 정신적 연령은 젊어 졌지만 상대적으로 사회적 제도는 젊지 못하다. 이제는 회갑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최근 심리학에서는 60대를 재성장의 세대라 부른다. 삶의 목적이 생존과 부양에서 자기실현으로 옮겨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능력, 건강, 경험이 모두 충족된 세대이면서, 여전히 배움과 도전이 가능한 나이. 즉, 과거의 회갑이 노년의 문턱이었다면 오늘의 회갑은 청춘의 연장이다.
이 시대 회갑의 새로운 의미는 단순히 생물학적 장수의 축하가 아니라, 삶의 전환기에 대한 응원과 축하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스스로 답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회갑에 대한 사회적 제도와 정서도 이에 걸맞게 바뀌어 가야 한다.
앞서 조카의 조언에 필자도 난화분에 ‘축회갑’ 대신 다음과 같이 적었다. ‘누님의 인생 2라운드, 홀인원을 기원합니다.’라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