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행 첫해를 맞은 고교학점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70%를 넘는다면 심각한 사안이다.
한 사설학원이 최근 고1 학생과 학부모 4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다.
응답자들은 ‘고교학점제가 바뀐다면,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는가’라는 질문에 72.3%가 ‘폐지’라고 답했다. ‘현행 유지’(6.4%)나 ‘확대’(5.3%)는 10%에도 크게 못 미쳤다. 고교학점제 경험에 대한 만족도에서 75.5%가 ‘좋지 않다’고 한 반면 ‘좋다’는 고작 4.3%였다. ‘향후 진로, 적성 탐색 및 결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도 ‘아니다’가 76.6%나 됐다.
이쯤 되면 온통 부정투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 스스로가 진로와 적성을 감안해 과목을 선택하고 일정 학점을 이수하면 졸업하는 제도다. 모든 고등학생들이 획일적 교육에서 벗어나 대학처럼 과목을 자유롭게 수강토록 해 교육의 다양성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에 들어갔다. 오는 2027년까지 고등학교 전 학년이 고교학점제 아래 공부를 하게 된다. 일대 혁신이라 하겠다. 하지만 2020~2024년까지 시범운영을 거쳤음에도 교육현장에서 여러 불평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교사들은 업무 과중을 호소하고, 학생들은 과목 선택에 혼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입시에 민감한 나라도 없다. 학생들이 진학에 초점을 맞춰 과목을 선택하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설문에서도 과목 선택 시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대입 유·불리’(68.1%)를 꼽았다. 그런데 자신이 수강하고 싶은 과목이 개설되지 않으면 낭패다.
고교학점제 시행으로 외려 사교육 의존이 확산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렇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가뜩이나 사교육비로 학부모들의 허리가 휘고 있다. 2024년 기준 사교육 시장 규모가 27조원이나 된다. 학생들이 입시에 유리한 과목을 선택하기 위해 사설 컨설팅으로 몰려들고 있다.
심지어 컨설팅 업체의 문을 두드리는 학교까지 있다고 한다. 고교학점제의 취지는 평가할 만 하다. 그러나 제도시행 초기라 하기에는 너무 많은 지적이 도출되고 있다. 학생은 실험의 대상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