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란 수필가
청주의 가을밤, 블루체어아트홀의 막이 오르는 순간, 어둠을 가르며 울려 나온 첫소리는 명창 채수정 선생의 목소리였다. 그 울림은 단순히 귀로만 들리는 노래가 아니었다. 긴 세월을 살아내며 삶의 결마다 스며든 숨결이자 인간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품은 생의 진동이었다. 마치 깊은 산사의 범종이 새벽 공기를 울리듯 채수정 선생의 소리는 단숨에 청중의 마음을 정좌하게 했다. 그 순간, 나는 판소리가 단지 예술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을 증언하는 목소리이며 세대를 잇는 기도임을 깨달았다.
뒤이어 무대에 선 이는 제자인 함수연 명창이었다. 제자의 소리는 스승의 음결을 닮았으면서도 분명히 자기의 결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스승에게서 이어받은 배움 위에 자신의 세월과 숨을 차곡이 얹어 새롭게 빚어낸 소리였다. 스승의 소리가 굳건한 대지라면 제자의 소리는 그 위를 흐르는 강물 같았다. 대지는 강물을 품어 깊이를 주고, 강물은 대지를 적시며 더 멀리 흘러간다. 그날의 무대는 바로 그 대지와 강물이 공존하며 이루어낸 한 폭의 조용한 풍경이었다.
공연의 주제는 ‘잇다’였다. 단어 하나가 이토록 많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공연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소리, 전통에서 오늘로 이어지는 시간은 무대에서 객석으로 이어지는 울림이었다. 잇는다는 것은 곧 사라지지 않게 하는 일이며 끝내 이어주어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문득 내 삶을 돌아보았다. 나 또한 글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고자 애써온 사람이다. 문학치료의 현장에서 어르신들의 기억을 글로 이어주고, 환자의 상처를 이야기로 잇고, 젊은이들의 내일을 글쓰기로 열어주었다. 그것은 판소리가 소리로 이어내는 일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글과 소리는 서로 다른 도구일 뿐 결국은 마음을 이어주는 일이고 존재를 잇는 일이다.
공연의 막이 내리고 관객들이 일어나 박수를 보낼 때, 나는 스승과 제자가 함께 서 있는 장면을 마음에 오래 담았다. 스승은 제자를 통해 자신을 이어가고, 제자는 스승을 품으며 미래를 연다. 그렇게 이어지는 길 위에 나 또한 작은 발자국을 얹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청주의 가을밤은 고요히 깊어 갔지만 내 안에서는 여전히 소리가 맴돌았다. 그것은 판소리의 메아리가 아니라, 내 삶을 향한 다짐이었다. 잇는다는 것은 기억을 지켜내는 일이며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고, 사라짐을 넘어 영속으로 향하는 길이다.
나는 남은 삶을 잇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기억을 글로 잇고, 마음을 마음으로 잇고, 사라져가는 것들에 다시 숨을 불어넣으며 살아가는 사람이고 싶다.
언젠가 누군가가 내 삶을 이어갈 때, 그것 또한 또 다른 ‘잇다’의 증거가 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