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오영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인권사무소장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교수는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제동장치가 고장난 기차 기관사이고 현재 진행 방향에는 5명의 사람이, 방향을 전환하면 1명의 사람이 부딪쳐 사망하는 상황에서 당신은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어떤 사람은 선로 방향을 전환한다고 하면서 그 이유로 1명의 목숨보다는 5명의 목숨이 더 가치가 크지 않냐고 제시할 수도 있다. 또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상주하고 있는 곳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지만 다수가 아닌 1~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 희생자에 집중하기 보다는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아 다행이라며 기억 속에서 금방 잊히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다행인 일일까.

얼마 전인 10월 29일은 서울에서 발생한 이태원 참사 3주기였다. 이태원 참사 발생 당시만 해도 사망자와 유가족에 대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조롱과 멸시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5.18 민주화운동과 비교하며 이태원 참사가 이보다 더 귀한 참사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 대해서는 이제는 좀 그만하라는 사람들도 여전하다. 희생된 사람의 숫자에 따라, 참사의 원인에 따라, 모인 장소나 이유에 따라 생명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일까.

성별, 나이, 장애, 국적, 인종, 혼인 여부 등에 관계없이 우리 모두의 생명은 똑같이 존귀하고 소중하다. 한번 잃으면 되찾을 수 없다. 인권과 관련한 국제규범이나 헌법 조항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는 당연한 명제다. 희생자와 유가족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더욱 명확하다. 사망자 수는 우리에게 숫자로 보여 체감되지 않지만, 가족을 잃은 유가족에게는 단 한 명의 사망자라도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일 것이다. 항상 함께했던 가족이 영영 돌아올 수 없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데, 유가족의 마음을 어찌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모든 일상생활 속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생활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건과 재난은 언제든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고, 실제로 언론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황당한 사건, 사고 내용을 접할 때도 있다. 일을 하든, 공부를 하든, 여행을 가든, 놀러 가든, 쉬고 있든 우리는 매 순간은 안전해야 한다. 희생 원인이 무엇이든, 숫자가 적든 많든 모두의 생명은 소중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며, 우리에게 이들의 죽음과 아픔을 조롱하고 목숨의 값을 저울질 할 권리는 없다. 단 한 명의 사망자만 발생하더라도 유가족에게는 전부를 잃은 것과 같다는 마음을 이해하고, 그 죽음에 있어 차별이 없어야 한다. 세상에 더 귀한 참사는 없다. 가족과 지인을 잃은 모든 사람에게 위로를 보내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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