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온윤(1993~ )

▲ 이미지 gemini AI 제공

세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다
한 사람에게 세 사람이 필요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사랑하는 자기 자신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그러지 않으면 자신에게 남은 부드러운 빵을
누구에게 주고 싶은지
구별할 수 없을 테니까

빵의 부드러움을 모르는 한 사람에게도
그들은 꼭 셋이어야 했다

세 사람이라면
한 사람이 함께 있지 않아도
외롭지 않을 두 사람을
생각할 수 있을 거였다


논어 술이편에는 삼인행(三人行)이라는 말이 있다.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삼인행, 필유아사언,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 세 사람이 길을 간다면, 그 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만한 사람이 있으니, 좋은 점은 본받고 나쁜 것은 살펴서 스스로 고쳐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둘이 만나면 잘 지내다가도 셋이 만나면서 그 사이가 틀어지고 서로 갈라섰다고 하는 말을 나는 여러번 듣기도 하였다. 젓가락 두 짝은 절대 설 수가 없지만 삼발이가 되면 안정적으로 설 수 있는 것과는 영 딴판인 셈이다.

세 사람만 모여도 그 사이가 갈라지고 간격이 생긴다는데. 하물며 우리 사회야 말로 대단한 게 아닌가. 거기엔 감정이 있어서 그렇겠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가 너무 안이하게 가르쳐온 때문은 아닐까. 언제나 나와 너를 중심으로. 흥부와 놀부, 토끼와 거북이, 콩쥐와 팥쥐, 영이와 철수, 해와 달 등. 이렇게 두 역할을 중심으로 접근해 왔으니 ‘우리’가 되지 못한 건 아닌지. 이제는 흥부와 놀부와 길부, 콩쥐와 팥쥐와 옥수수, 영이와 철수와 경희 등. 이렇게 더 넓은 역할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진정한 ‘우리’가 되도록 말이다.

- 김완하(시인·시와정신아카데미 대표)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