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투자회사에 현금 수거 30대, 채권 변제금 전달 알바 20대 모두 무죄
재판부 “고의성 인정할 수 없어”… 구직사이트서 범죄조직 차단 근본 대책 必

보이스피싱 범죄 [연합뉴스TV 제공]
보이스피싱 범죄 [연합뉴스TV 제공]

[충청투데이 김중곤 기자] 구직사이트를 매개로 피싱 범죄에 가담한 청년들이 최근 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

수거책 등 범죄를 완성하는 역할을 했다 하더라도, 행위가 범죄라는 미필적 고의가 없다면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근본적으로는 청년들의 취업 욕구를 악용하려는 범죄조직이 구직사이트에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는 대책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방법원 제13형사부(장민경 부장판사)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36, 여)에게 지난 15일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구직사이트에서 알게 된 보이스피싱 조직의 지시에 따라 지난해 9월경 피해금 약 1억 6000만원을 수거한 혐의를 받는다.

펀드, 부동산 투자회사로 가장한 피싱 조직은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린 A씨에게 접근했고, “지정된 장소에서 헌금을 건네받아 전달해주면 액면금액의 1% 등을 지급하겠다”며 일을 제안했다.

같은날 대전지법 제4형사부(구창모 부장판사)도 사기방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20)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10개월과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내렸다.

B씨 또한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려뒀고, ‘채권의 변제금을 수령해 전달하는 아르바이트’라는 범죄조직에 속아 2023년 11월경 3차례 현금 수거책으로 범죄에 가담했다.

재판부가 A·B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유는 이들에게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미필적 고의가 없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둘 모두 재판에서 보이스피싱 범죄인 줄 몰랐다고 일관되게 진술했고, 실제 현금 수거를 위해 택시를 이용하면서 호출앱에 실명과 생년월일을 그대로 적거나 택시기사에게 연락처를 주는 등 범죄를 인식했다고 보기 어려운 행동을 보였다는 것이다.

구 부장판사는 “보이스피싱 조직은 취업이 절실한 사회초년생 등에게 접근해 마치 정상적인 금융회사의 대출 및 금원회수 관련 업무인 것처럼 교묘히 기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범행 도구로 이용된 사람들에 대해 그 결과가 중대하고 경위에 비난가능성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주관적 고의를 쉽게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유·무죄를 떠나 고액의 일자리라며 청년구직자를 범죄의 늪에 빠뜨리는 유혹이 구직사이트에 만연한 것은 사회적 혼란과 손실을 야기하는 만큼 고강도의 대책이 요구된다.

이에 대해 구직사이트 관계자는 “플랫폼에서 구인자(범죄조직)가 구직자에게 개별 접근하는 행위 자체를 사전에 완전히 차단하기는 어렵다”며 “문제 행위가 확인될 경우 해당 계정의 이용을 즉시 제한하고 재가입을 차단하는 등 강력히 제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구인 공고에 ‘고수익 보장’이라 적혀 있다고 회사를 단속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요즘은 중장년층도 수거책에 활용되고 있어 다양한 연령의 구직자를 대상으로 신종 피싱 수법을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중곤 기자 kgony@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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