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철 대전시 녹지농생명국장
회색빛 건물들로 가득한 도시 한복판, 그 사이로 스며든 푸른 숲은 우리에게 쉼과 위안을 준다. 가까이에 숲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을 얻고, 바쁜 일상에 숨을 고를 여유를 찾는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도시숲은 1인당 연간 약 499만원의 건강 혜택을 제공하고, 도심 온도를 평균 3도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 주말마다 찾는 동네 뒷산, 아이들이 뛰노는 숲놀이터, 산책길이 있는 도시의 삶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기후위기의 심화로 이 특별함은 위협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 4월 대구시 노곡동 함지산 산불은 강풍을 타고 주거지로 번질 뻔해 6500여 명이 긴급 대피했고, 대전시 서구 산직동에서도 2년 전 대형산불로 장태산 인근 복지시설 이용자들이 위험에 처했다. 산림청은 올해 초 보고서를 통해 서울·인천·부산·대전·대구 등 주요 대도시를 ‘산불 우려 지역’으로 명시하며 도시형 산불의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도심 속 산불시대’에 살고 있다.
이에 대전시는 ‘숲과 함께 살아가는 도시’에서 ‘숲의 위협에 대응하는 도시’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첫 번째 전략은 차단이다. 기존 산불 취약지에 국한하지 않고 산림과 맞닿은 주거지와 생활권 전반의 위험도를 재분석한다. 이를 토대로 주택지 인근 산림의 수목을 정비하고 제거해 완충구역을 만들며, 침엽수 중심의 숲을 활엽수·혼합림으로 전환해 불길 확산 속도를 늦추는 방화림을 조성한다.
두 번째 전략은 감시다. 도시 산불 위험 지점 곳곳에 AI 기반 원격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 열기, 습도, 연기, 바람의 방향 등 다양한 요소를 실시간 분석하고 경보망을 구축한다. 현재 문화유산과 중요시설에 한정된 살수 타워도 주거밀집시설이나 복지시설 인근까지 확대 설치한다. 수분 관리 강화와 초기 대응 속도 향상이 목표다.
세 번째 전략은 대피다. 숲과 인접한 어린이집, 노인요양시설, 사회복지시설 등 고위험 취약시설에 맞춤형 대피 매뉴얼을 마련하고 분야별 정기 훈련을 실시한다. 도시계획·교통·환경 부문과 협력해 산림지 인접 개발단계부터 산불 대피 시스템을 반영하며, 영상·카드뉴스·체험형 콘텐츠 등을 통해 시민 인식 개선도 강화한다.
그동안 숲 가까이에 자리한 곳들은 ‘숲세권’으로 불리며 선호됐지만, 불길이 닿는 순간 ‘불안세권’으로 바뀐다. 산불로부터 도시를 지키는 준비가 곧 숲세권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다. 대전시의 ‘차단·감시·대피’ 3대 전략은 단순한 대응을 넘어 실질적인 해법이 될 것이다. 기후위기가 일상이 된 도심에서도 숲과 함께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 그것이 바로 대전시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일류산림도시의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