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가톨릭꽃동네대학교 사회복지·심리상담학부 교수

뉴욕의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한국인 여성이 1시간을 기다려도 음식을 받지 못했다. 뒤늦게 주문한 백인 손님들이 먼저 식사를 받고, 주방에서는 비웃음이 흘렀다. 그녀의 눈물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인종차별의 낙인이었다. 이 영상은 하루 만에 700만회를 넘기며 전 세계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파리 패션 위크에서도 블랙핑크 로제의 얼굴이 단체 사진에서 잘려나갔다. 세련된 무대 위에서도 차별은 은밀히 작동한다. 더 무서운 것은 존재가 아무렇지 않게 ‘삭제’된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경찰이 유색인 청년의 뺨을 때리고 침을 뱉는 장면은 문명국의 가면 아래 숨은 폭력이 얼마나 일상적인지를 드러냈다.

인종차별은 더 이상 특정 국가의 병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화의 그늘이며, 권력과 무관심이 만들어낸 일상의 폭력이다. 글로벌 브랜드들이 ‘눈을 찢는 포즈’로 사과했지만, 삭제가 곧 치유는 아니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여전히 "누가 우리를 비하했고, 누가 침묵했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차별의 기억은 기록처럼 남아, 다음 세대의 감정 속에서 다시 깨어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저출산과 고령화의 해법으로 글로벌 인재를 유치하고, RISE 사업을 통해 유학생을 지역에 정착시키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단일 민족’의 오래된 프리즘에 갇혀 있다. 이주노동자, 결혼이주민, 난민, 유학생이 함께 살아가는 시대에 그들은 거리와 공장, 학교와 병원에서 보이지 않는 경계 안에 머문다. 다문화는 이제 특수가 아니라 일상이다. 그러나 제도는 따라가지 못하고, 마음은 닫혀 있다. 진정한 통합이란 ‘한국인이 되라’가 아니라 ‘한국 속의 자신으로 설 수 있도록’ 하는 포용에서 시작된다.

미국의 역사는 세 가지 교훈을 남긴다. 첫째, 법보다 마음의 개혁이 먼저다. 시민권이 있어도 편견이 남으면 차별은 되살아난다. 둘째, 동화가 아닌 공존, ‘차이의 존중’이 통합의 출발점이다. 셋째, 연대의 감각이다. 연대는 먼 나라의 약자를 향한 연민이 아니라 곁의 사람에 대한 책임이다.

통합은 제도가 아니라 태도이며,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다. 교육에는 다양성과 공존의 가르침이, 언론에는 존중과 연대의 서사가, 정책에는 인간의 존엄이 자리해야 한다.

인종차별은 남의 일이 아니다. 언젠가 우리도 누군가의 타국인이 될 수 있다. 차별을 멈추는 일은 제도보다 마음의 문제, 통합을 이루는 일은 숫자보다 태도의 문제다.

지금, 세계가 서로를 다시 바라보는 문 앞에 서 있다. 그 문을 닫을 것인가, 함께 열 것인가. 그 선택이 곧 우리 사회의 품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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