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충청대 호텔조리파티쉐과 교수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영화에 등장한 김밥, 라면, 과자 등 K-푸드도 예외는 아니다.

오래 전부터 한식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김치와 불고기, 비빔밥 같은 대표 메뉴들은 이미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 영광 뒤에는 숨은 영웅이 있다. 바로 위생과 안전을 지키는 ‘해썹(HACCP·위해요소와 중대관리지점)’ 시스템이다.

해썹은 제품의 생산부터 유통까지의 전 과정에서 위해요소의 혼입이나 교차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주요 공정을 중점적으로 관리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인증하는 과학적이고 가장 안전한 식품 안전관리제도다,

이 제도는 1960년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우주식품의 절대적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균이나 오염 물질이 조금이라도 포함되면 치명적일 수 있는 환경에서 과학적 관리 체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해썹 제도를 도입한 것은 1990년대다. 농식품 산업의 수출 성장과 함께 국제 기준에 맞는 식품 안전 관리가 필요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도를 정착시키며 현재는 축산물, 가공식품, 외식업체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됐다.

2003년 도축업을 시작으로 2012년 어묵류 등 6개 품목 해썹 의무적용이 시행됐다. 2014년에는 대표적 한류식품인 김치류 중 배추김치도 해썹이 의무적용이 시행됐고 이후 과자, 캔디류, 순대, 떡볶이떡, 어묵, 국수·유탕면류 등이 줄줄이 해썹 대열에 합류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식품 위생 수준은 세계적이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 식품 시장에서는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원재료의 생산지, 가공 공정, 운송 과정까지 꼼꼼히 따지는 소비자들의 심리 속에서 해썹은 ‘식품 여권’ 역할을 하고 있다.

충북은 해썹 제도 정착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음성·진천·청주 일대에 몰려 있는 식품산업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다. 식품안전을 걱정하는 해외 바이어들을 설득할 때 해썹 인증서는 프리패스카드였다. 충북도는 해썹을 단순한 인증이 아니라 농업인 소득과 수출 경쟁력 확보를 위한 무기로 보고 컨설팅과 시설 개선을 지원해왔다.

한식 세계화는 맛있고 힙하다는 평을 넘어, 안전한 식문화를 수출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선봉에는 ‘맛’과 ‘멋’이 서 있지만 ‘건강’과 ‘안전’이 든든하게 뒤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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