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 충남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
前 대전음식문화진흥원 이사장

지난 2월 작고한 홍선기 전 대전시장은 ‘행정의 달인’으로 불린다. 그의 업적이야 이루 말할 수는 없지만, 필자는 그의 미래를 읽어내는 뛰어난 통찰력을 이야기하려 한다.

2002년은 한일월드컵이 열린 해이다. 대전에도 월드컵경기장이 건립되고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전을 비롯해 모두 3경기가 열렸다.

경기장 건립 당시 민선 1기에 이어 2기 대전시장이었던 그는 "국내외 많은 손님이 대전을 방문할 터, 대전만의 특색있는 음식과 술을 홍보하고 지원하라"고 주문했다. 설렁탕, 돌솥밥, 삼계탕, 구즉도토리묵, 숯골냉면, 대청호민물고기매운탕과 동춘당 국화주, 구즉 농주, 대청참오미자주 등 대전 ‘육미삼주(六味三酒)’는 그렇게 탄생했다.

육미삼주가 정해진 지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 이를 처음 구상한 홍 시장을 ‘미래를 읽어내는 통찰력의 소유자’라고 칭송하는 것은 지금의 트렌드와 무관하지 않다. 텔레비전을 켜보자. 온통 먹방(음식 관련 방송)이다. 연예 프로그램도 음식, 여행 프로그램도 음식 콘텐츠가 빠지지 않는다. 음식을 소재로 한 유튜브, 라면 20그릇을 먹어 치우는 유튜버는 조회수가 치솟는다. 셰프의 몸값은 오르고 외식 전문가는 돈방석에 앉았다. 음식의 마력이다.

지난해 전북을 방문한 9800만명 중 43.1%인 4000만명이 전북 방문 이유를 ‘음식때문’이라고 답했다. 대전이 ‘노잼도시’에서 ‘꿀잼도시’로 변신하고, 도시 브랜드 향상은 물론 관광객 유치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성심당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한국관광공사의 관광 데이터랩 등 많은 연구나 통계에서도 관광객이 여행지를 선택하는 첫 번째 요소로 ‘음식’을 꼽았다. 때문인지 전남 목포시는 2019년 국내에선 처음으로 ‘미식 도시’를 선포했고, 여수, 광주, 강릉, 강화 등 너도나도 음식을 통한 관광객 유치, 지역경제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대전은 이미 25년 전 ‘육미삼주’를 통해 이를 실현하려 했으니, 지금 고인이 된 홍선기 전 대전시장을 칭송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같은 ‘선점’을 대전에선 계속 살려 나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삼계탕이, 설렁탕이 대전에만 있는 것이냐"라며 육미삼주의 지역 연고성을 의심하는 지적도 있다. 다른 한편으론 "떡갈비가 담양에만 있느냐, 부산돼지국밥 돼지는 충남산"이라는 반론도 있다. 어쨌건 분명한 점은 이제는 음식을 콘텐츠로 하는 산업이 너무 큰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K-푸드’가 엄청난 영역을 구축하고 국가 위상도 높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대전이 꿈돌이 라면이나 꿈돌이 호두과자로 시대에 따라 변신을 시도하고, 충남도와 충남문화관광재단이 충남 15개 시군 특산물을 활용한 ‘충남15계탕’을 출시한 것은 매우 신선한 시도다. ‘육미삼주’에 얽매이거나 이를 재해석하자는 것은 아니다. 음식을 통한 콘텐츠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에 대해 이제는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시민사회단체, 관련 전문가, 업계가 공유하고 새로운 음식 콘텐츠를 통해 지역 발전을 꾀하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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